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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던 인물이다. 히틀러와 그를 중심으로 창조된 수많은 선전조작과 프로파간다 기법은 지금도 현대 자본주의 신문방송학에서 (출처를 알리건 밝히지 않던 간에) 인용되고 있다. 그는 연합군의 프랑스 상륙으로 기울어져 가던 전황을 막아내기 위한 방도로 “총력전”을 제창했고 어린 병사 졸러가 생존을 위해 저질렀던 대학살을 조국의 영광으로 포장해 대중에게 선보이려 한다.
그리고 연합군 정보국은 이 나치들의 유희판을 뒤엎어 전쟁의 결정적 국면을 만들 기회에 숨죽이고 주목한다. 결국 영화가 전쟁과 역사를 결정한다. 타란티노가 창조한 대체역사로서의 이 영화 속 세계는 결국 영화가 세상을 (어떤 식으로건) 구원하는 결말로 마친다. 비밀작전 명은 오퍼레이션 시네마. 히틀러와 나치 도당을 불태우는 것은 영화필름. 그들이 종말을 맞는 곳은 파리의 시네마테크. 그리고 그들이 종말을 맞는 것을 선포하는 것도 35밀리 흑백필름을 수단으로 한다. 그리고 영화는 한 편의 거대한 잔혹우화로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소재를 정공법으로 쳐낸다. 곰 유태인의 야구배트가 독일군의 머리를 날려버리듯이. 그렇게 불타는 필름과 무너져 내리는 극장은 세계를 비록 가상현실 속에서나마 구현한다. 수백만 군대가 못해낸 일을 영화가 해낸다. 이것이 영화로서 세계를 재창조하려는 한 악동 영화광의 야심이자 영화에 대한 헌사이다. 극장은 현대의 만신전(팡테옹)이다. -. 이 영화는 타란티노의 8번째 영화다. 저수지의 개들 (1992) 펄프 픽션 (1994) 포룸 (1995) 재키 브라운 (1997) 킬 빌 (2003) 킬 빌 2 (2004) 데쓰 프루프 (2007)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2009) 쿠엔틴 타란티노 Quentin Tarantino 가 <저수지의 개들>과 <펄프 픽션>으로 세상을 뒤흔든 지도 15년여가 넘게 지났다. 동시대에 세계 영화계를 뒤흔들고 경악하게 했던 수많은 신예 감독들 중에서 그는 몇 안 되는 생존자이고 여전히 자신의 창작 세계를 고갈시키지 않고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고 있다. 또한, 그 일군의 신성들 중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마침 이 시기는 국내에서도 영화 저널이 전성기를 갓 시작했던 때이기도 하다. 그 때 영화매체를 탐독하던 이들이라면 당시에 한 달이 멀다하고 폭발하던 젊은 감독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타란티노는 굳건히 영화라는 대지에 뿌리를 굳건히 내린 거목이 되어가고 있다. 제작자와 거대 영화사들의 무대인 할리우드에서 그는 프란시스 코폴라가 조에트로프 스튜디오를 말아먹으면서 상실했던 작가의 영화, Film Art를 고전적으로 구현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을지언정, 현재형으로는 설령 그것이 모사에 불과하거나 억지 대입일지언정, 가장 그 위상에 가까운 존재이다. 타란티노는 이제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 -. 초강력 대사의 위력과 힘이 넘치는 컷들의 성찬 챕터 1. 란다 대령은 정중하게 주인에게 들어가도 되겠냐고 주문한다. 그의 예절을 다한 간청은 곧, 스티븐 킹의 명작, <살렘즈 롯>에서 흡혈귀들이 그가 피를 빼앗으려는 희생자들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 간청하는 것과 동일하다. 처음부터 그의 의도는 명확하고 대화는 결코 공정하지 않을 것임을 희생자, 피해자들은 잘 알지만 그의 뒤에 있는 나치독일의 권력과 무장군인들의 무력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영화 초반, 힘차게 장작을 패던 라파디트 씨, 프랑스인의 자존심을 상징하듯 보이던 건장한 거한은 외소하기 짝이 없는, 그리고 어떠한 험한 말도 내뱉지 않는 키 작은 독일인에게 점점 굴복하게 된다.
언어적 폭력에 의한 것이다. 협박은 배후의 현실적 힘(폭력)에 의해 그 정당성을 인위적으로 쟁취한다. 란다는, 그리고 타란티노는 그것을 너무 잘 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정면으로 대항하지 않는다. 대신에 미끄러지듯, 광대의 조크를 구사한다. 그 조크는 독설은 아니다. 독재자가 웃어넘길 수 있는 그런 조크다. 하지만 독재자도 급이 안 되면 그냥 넘길 수 없을 그런 조크. -. 인종차별에 대한 숨은 비수들 유태인에 대하여 란다 대령이 쥐와 다람쥐의 비유를 들면서 왜 우리가 유태인을 미워하는가를 논증할 때의 설득력은 대단하다. 반 유태인 정서와 탄압은 히틀러와 나치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금의 신종 플루보다 백배 천배는 더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을 당시 유럽인들은 유태인이 우물에 독을 풀어 넣은 것으로 단정하고 유태인들을 세균을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산채로 불태우는 짓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곤 했었으니까. 란다 대령은 유태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명령에 의해서 유능하게 행할 뿐이다. 그에게는 다만 사냥꾼의 쾌감, 그로 인해 얻어지는 지위와 권력이 중요할 뿐이다. 그는 유태인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사냥할 때도 유태인에 대해 쏟아 붓는 노력 이상을 할 인물이다. 그는 유태인에 대한 감정이 편견임을 잘 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은 사실 피해자에 가까운 존재였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안다. 이 지점에서 유럽의 뿌리깊은 유태인 탄압 전통과 히틀러와 그 일당들에 의해 가해진 나치 식의 인종 학살은 계승과 변이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유태인에 대한 탄압이 결코 적지 않은 공감대를 얻었던 것은 그들이 과거에는 고리대로 상징되는 지하금융과 그들만의 게토에서 거주하던 폐쇄성, 그리고 다른 종교와 풍습에서 기인한 것이었지만 히틀러와 나치가 이 점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속내로 고심했던 것은 사회적 적대를 하기에 딱 알맞은 앞에서 밝힌 전통과 함께 그들이 가진 사회적 부와 지위를 빼앗아 나치 방식의 분배를 하기 위해서였다.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고 탄압하는 데는 대개 그런 이유가 있다. 괜히 괴롭히는 게 아니다. 결국 문제는 이 나라의 현재 집권정당이 뇌까리듯 ‘경제’다. 그리고 그 집행자들은 자신의 이성을 부정하기 위해 더욱 광포해진다. 그리고 거기에 중독된다. 거기에 개개인이라는 인격 아래 행해지는 잔혹함이 덧붙여진다. 그래서 죄를 실행한 자에 대한 분노와 이를 막기 위한 분노가 더해진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배후에 숨어 있는 구조와 이로 인해 이익을 얻는 자들에 대한 대항으로 치환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쉽게 간과해버리곤 한다. 차라리 나치의 머리가죽을 벗기거나 생존자 이마에 낙인을 긋는 개떼들의 행위가 더 근본을 짚고 있다. 몸서리쳐지는 기억을 낙인찍는. 또 다른 주홍글씨. 흑인에 대하여 괴벨스가 등장한다. 그는 파리의 우아한 카페에서 미국이 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것은, 그들이 과거 노예로 부렸던 흑인들을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제시 오언스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100m, 200m, 400m계주, 멀리뛰기 종목에서 우승하여 4관왕을 달성했으며 당시 그의 최대 라이벌은 히틀러가 총애하던 독일 선수였다. 그러나 두 라이벌은 개인적으로는 서로 존경했으며, 그 독일 선수가 제시 오언스에게 가졌던 경의는 실제 미국에서도 그가 받지 못했던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두 사람은 전쟁 때까지 서로 서신을 교환하는 친구가 되었으며 독일 친구가 전쟁에서 전사한 뒤 제시는 그의 아들과도 인정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쇼사나의 극장에서 유일하게 고용된 그녀의 친구 흑인 영사기사는 충고에 의해 <조국의 영광> 시사회에서 배제된다. 아무리 그가 유능한 영사기사라도 상관없다. 흑인이 <조국의 영광>(당시 민족사회주의국가이던 제 3제국에서 ‘조국’과 ‘민족’은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필름을 만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챕터 4.의 지하 바에서의 카드 게임. 게슈타포 소령의 이마 위에 붙은 카드에 적힌 글자는 킹콩이다. ‘밀림’에서 ‘강제적으로’ 배에 ‘쇠사슬로 묶여’ 미국에 도착한 존재는? 이라는 질문에 게슈타포 소령은 처음에 “흑인”을 답하고 다음으로 “킹콩”을 답한다. ※ 나치의 입을 빌어 흑인을 비하했지만, 실은 미국 역시 지금도 그렇지만 인종차별국가의 멍에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다만 워낙 어울려 살다 보니 우리나라처럼 낯설고 상호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차별과 좀 다를 뿐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흑인은 필요에 의해 징집되었지만 대부분 후방의 노무부대에 동원되었고 전투부대로 편성된 사단도 백인과는 아예 별개로 편제되었다. 물론 지휘관은 대부분 백인 장교들이었다. 이 부분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영화 자체는 평작과 준작을 오가지만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하트의 전쟁>을 한번 보시길 권한다. 실로 탁월한 묘사이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이 문제를 지적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타란티노는 이 영화를 우화라 했지만 이 화려한 우화의 소재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사실 이솝 우화가 어디 가벼운 이야기들인가.
이 영화에서 미스 브리짓을 만나기 전에는, <월드 오브 투모로우>의 기네스 펠트로가 흑백영화 시절의 영광스런 여배우의 잔향을 아주 조금이나마 부스러기처럼 재현해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 타이틀은 B 디트리히, 다이앤 크루거에게 돌아감이 마땅하다.
재현해낸 그녀의 우아함과 - 그 점 때문에 그녀는 비명에 갔지만 그게 그녀에게 더 어울림 - 당시의 여배우라면 이렇게 차려입고 다녔을 것이라는 상상을 완벽하게 구현한 미장센의 승리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다이앤 크루거가 독일인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 B 디트리히라고 불릴 때의 “디트리히”는 전설적인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를 상징한다. 그녀는 히틀러가 집권하던 시절까지 독일 영화계에서 전성기를 누린 여배우이며, 그레타 가르보와 함께 어떤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이미지의 집합체이다.
그러나 히틀러가 열렬히 그녀를 애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치에 혐오감을 느껴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고, 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망명한 독일인들과 함께 反 나치 선전에 활약한 열혈여성이다.
그녀가 비극적인 종말을 맞기 직전, 그로테스크한 신데렐라 시늉을 하던 그 장면과, 죽음을 맞을 때, 파르르 떨던 그녀의 다리 연기는 감독 타란티노가 풋 페티쉬가 있다는 혐의를 확실히 증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 영화는 컷의 몰입도 면에서는 타란티노의 필모그래피 속에서도 최상급에 속한다.
챕터 2. 개떼들의 활약상(학살상)이 펼쳐지고 심문에 영 시원찮은 대답을 해대는 독일군 상사를 겁박하기 위해 토굴 속에서 야구배트를 벽에 쳐대며 누군가가 서서히 걸어나온다. 우리는 밥샵까지는 아니더라도 건장한 체구의 거한이 나오리라 기대했지만 실제로 나온 건 좀 체구 좋은 평범한 청년. 그가 바로 배낭여행객들이 절대로 여행 전 봐서는 안될 영화 <호스텔> 시리즈의 연출자. 타란티노가 총애하는 신예 감독. 실감나게 야구배트로 독일군 머리를 박살내는 도살자. 나치에 대한 홀로코스트 유태인의 대답. 일라이 로스다. 의외로 연기를 잘한다. 또한, 챕터 5.를 장식하는 프로파간다 시네마, “조국의 영광”을 연출하기도 했다. ※ 타란티노가 도저히 영화 속 영화까지 연출할 시간이 없어서 일라이 로스에게 그 작업을 떠맡겼다고 한다. 이를 통해 일라이 로스는 피범벅 사지절단 고어 영화 말고도 연출할 수 있다는 확인을 우리에게 시켜주고 있다. 부디 타란티노에게 필요한 엑기스는 다 뽑아먹어 주기를 기원한다. ![]()
홀로코스트 더 브라이드, 슈사나 - 멜라니 로랑 <킬빌>의 브라이드를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홀로코스트 현장으로 데려다놓은 캐릭터. 1983년생, 주로 유럽영화 몇 편에 출연하면서 이제 갓 주목받기 시작한 멜라니 로랑은 복수를 위해 자기 자신까지 불사르는 분노의 화염과, 전쟁이 아니라면 어쩌면 알콩달콩 로맨스의 대상이 되었을 독일 청년과 서로 총알을 박아대는 비련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다.
그 큰 눈망울과 시크한 표정 아래 그녀가 전쟁과 학살 때문에 보여주지 못한 또래의 기운을 살려낼 수 없었던 것은 전쟁을 만든 자들의 책임이다. 다하우 수용소를 갖고 개그 소재로 쓸 순 없는 노릇이니. 그녀가 거사를 앞두고 입었던 빨간 드레스는 그녀의 수의. 그녀가 졸러의 총탄에 아파하는 것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고통.
전쟁영웅과 빵점연인 사이의 졸러 일병 - 다니엘 브뢸 <굿바리 레닌>에서 50년을 거슬러 올라간 <신과 함께 가다>에서 그는 앳띤 미소년 수도사였다. <굿바이 레닌>에서 그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통해 대체역사를 만들어낸 청년이었다. <에쥬케이터>에서 그는 치기어린 좌파 활동가였다. 그러던 그가 아버지뻘인 68혁명 세대를 가로질러 그들의 원죄, 독일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2차 세계대전 전범세대로 등장했다. 졸러 일병은 이제 서서히 패전의 기운이 드리워지던 시기, 영웅적인 활약으로 프로파간다 시네마의 주인공이 된 격에 맞지 않은 옷을 걸친 전쟁영웅 “일병”이다. 그는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건실하게 직장생활을 했거나 대학에 다니면서 극장을 들락거렸을 청년이기도 하지만 250명의 미군을 홀로 사살한 당대의 저격수 영웅이기도 하다. 그의 그러한 모순적인 면모는 동시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극장 간판을 매만지던 슈사나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그 또래의 청년이 그렇듯, 그가 매력을 느낀 그녀에게 자신이 얼마나 잘나고 대단한 사람인지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차라리 그가 평범한 독일군이었다면 외면당하고 말았을 테지만, (어차피 슈사나는 독일군이라면 치를 떨고 있으니) 그의 기구한 프로포즈는 역사를 뒤바꿔 놓았고, 두 비극적 커플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상호 적대 버전으로 영사실에 눕혀졌다. 그는 자신이 주연으로 나온 대학살 시네마를 차마 보기가 힘든 마음약한 청년이지만, 동시에 전쟁영웅 행세의 혜택도 놓치기 싫은 그런 적당히 허영심 많고 적당히 순수하고 적당히 우유부단한 그런 청년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그와 그의 외사랑 연인, 그리고 역사까지 그의 한 수에 의해 뒤바뀌게 만들어놓았다. 다니엘 브뢸은 이번 영화 출연을 통해 독일의 20세기 세대를 모두 연기하게 되었다. 평범하고 선량하지만 역사와 시대에 휩쓸리는 독일인의 초상. 다니엘 브뢸.
※ “매”는 챕터 1에서 란다 대령이 독일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물론 당시 유럽에서 독일인은 좋게 애칭 붙여주면 ‘제리’고, 악감정이 있을 땐 ‘훈족’이나 그냥 ‘나치’로 불리곤 했다) “쥐”는 독일인을 “매”라고 불렀던 바로 그 자리에서 란다가 유태인을 지칭한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 표현을 약간은 중의적으로, 그리고 개념적으로 정리한다. 란다 대령의 대사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농민 라파디트씨조차 유태인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중세 이후로 유럽인의 원죄를 은근하게 드러내는데도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개떼들”은 물론 알도 중위의 특공대를 말한다. 타란티노는 백인에 대항해 싸운 백인들의 마지막 전쟁, 그것도 진정한 의미의 World War 로서는 유일한 전쟁이던 2차 세계대전 당시 억양으로 서로를 구분하던 시절의 잔상을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해 실제 독일 배우에게 독일인 역을, 프랑스 배우에게 프랑스인 역을 맡기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 바, 챕터 4. 지하 바에서의 마치 <저수지의 개들>의 창고 장면을 억양 맞추기 게임으로 재현한 듯한 효과를 창조해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자막 보기 불편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듯, 영어라는 세계 공용어를 모국어로 가진 세계 최대의 흥행 시장 미국 본토인들은 자막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독일어 - 이탈리아어 - 프랑스어 자막을 수시로 끼워 넣으며 실제 그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배우를 투입하고 언어의 소통 곤란에서 오는 미묘한 긴장감까지 활용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에게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는 별칭이 붙은 지 10여 년이 훌쩍 지나갔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헤모글로빈”의 시인이 아닌, 헤모글로빈의 “시인”이 되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영화에서 최대의 긴장감은 현란한 칼부림도, 둔탁하고 시끄러운 총격전도 아닌 바로 대사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니. ※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중 한 사람인, 현대 언어 철학을 개척한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진리의 경구를 읊어본다. “언어의 한계는 세계관의 한계” EU로 통합되어 하나의 국가를 추진하는 21세기 초입의 유럽만 볼 땐 상상할 수 없는 언어의 차이에서 나오는 두려움과 차별이 이 영화에선 생생하게 재현된다. 이제 그 다양한 언어와 억양을 구사했던 배우들을 짚어보자.
고전적인 악역으로 주인공의 숙적이 되어야 할 강력한 존재. 그런데 이 영화에선 사실 란다 대령이 주연이다. 영화 속에서 쇼사나와 알도 레인은 한번도 관계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란다는 이들 둘과 모두 관련이 있다. 아니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주요 캐릭터와 연계되어 있다. 그는 매력적인 악당이며 그가 챕터 1.에서 밝혔듯이 동정과 가치판단을 배제할 때 얼마나 경이로운 효율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잘 아는 인물이다. 도덕과 양심이 국가권력의 제 1기준이 아닐 때 란다 같이 유능한 사냥꾼 기술자는 어딜 가나 잘 살 수 있다. 우리는 란다 대령을 보면서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미국과 소련이 폰 브라운 박사 등 어찌 보면 대량살상 무기를 만든 전범들을 앞 다투어 보호하고 지원했던 기억, 731부대 기술자들을 미국이 비호하고 은폐했던 기억을 되살려낸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박근형이 분했던 친일 고등계 순사를 우리는 란다 대령을 통해 볼 수 있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독립군과 그들을 돕던 이들을 고문하고 죽였던 그의 말로가 과연 비참했는가. 국회의원이 되었고 이후로도 대대손손 잘 살 것이다. 란다 역시 비록 영화 막판에 블랙코미디 조크에 좀 당하긴 했지만 그렇게 잘 살 것이다.
그녀 스스로가 전쟁을 끝내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결국 비참하게 죽었을 뿐이다. 란다 대령은 우리가 역사 속에서 오랜 기간 봐왔던 그런 존재, 개인을 뛰어넘는 사회적 악의 근원적인 형태이다. 그는 인간성을 배제한 효율의 표본이다. 30년간 TV 드라마에서 주로 활약했던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 크리스토퍼 왈츠는 이 배역으로 2009년 칸느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사족에 불과하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의 지독한 조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란다 대령이 잘 먹고 잘 살 것이라는 픽션에 웃을 수 없다. 그런 존재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 왔으니까. 악인이 더 잘 잔다. 선인은 모두 관 속에 있으니. ※ 영화 개봉 전, 브라이언 싱어와 톰 크루즈의 영화 <발키리>에 대해 브래드 피트가 지나가는 말로 폄하했던 것은 본심일지도 모른다. 백장미 단처럼 전쟁이 유리할 때도 반전 운동을 했던 독일인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발키리 작전>에 임했던 독일의 유력인사들도 전쟁 이전부터 반전에 힘쓴 이들이 있지만 그 상당수는 역시 패색이 짙어지는데도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히틀러에게서 두려움을 느낀 측면이 많았다. 결국 전쟁 질 것 같으니까 책임 면하려고 준비한 것 아니냐는 조소는 절반은 틀리지만 나머지 절반이 결코 과장은 아닐 수 있으니까.
전통적으로는 악역 캐릭터인데 역시 주연이다. 이 영화를 만들 때 엄청나게 참고했을 로버트 알드리지 감독의 명작 <더티 더즌>에서 리 마빈이 했을 캐릭터를 재현한 알도 레인 중위. 그가 과연 전쟁이 끝나기를 바랄까. 이런 의문을 던져 본다. 계속 전쟁을 해야 나치 머리가죽을 더 모을 수 있을 텐데. 과연 알도 중위와 그의 대원들이 전쟁이 끝나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전쟁이란 존재는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 평범하고 영화 좋아하고 예쁜 처자 졸졸 따라다니는 샌님 청년도 희대의 저격수가 되는 전쟁에서 수백의 머리가죽을 벗겨내던 이들은 과연 히틀러의 죽음으로 곧 끝날 전쟁 이후 평화롭게 테네시주 시골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1편에서의 존 람보가 되거나 뉴욕 밤거리를 택시를 몰면서 다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알도 레인은 임무에 충실한 군인이라기보다는 무정부적 아나키스트에 가깝다. 그에게 전쟁은 나치의 머리가죽을 다 벗길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란다 대령을 손댈 수 없다. 란다보다 더 강한 권력과 지분을 가진 자들의 머리가죽에 손댈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를 통해 너무나 오래 봐 왔다. 알도 레인과 개떼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아무튼 영화의 엔딩과 함께 그들의 좋은 시절은 끝났다. 조지 스콧 패튼이 전쟁이 끝나자 더 이상 할 게 없었던 것처럼...... -. 우파 영화사와 레니 리펜슈탈을 호명하는, 독일 표현주의와 유럽대륙의 흑백영화 전성기를 회상하다. 전직 영화평론가인 영국군 중위가 장군과 처칠 수상 앞에서 독일 영화계에 대해 썰을 풀어놓을 때 가슴이 떨렸다. 세계영화사의 한 장, 텍스트로만 전해 듣던 그 내용이 눈앞에 펼쳐지는 시각적 재림의 황홀감. 우선 왜 이리도 우파라는 듣도 보도 못한 영화사에 대해 흥분하는지 소개부터 해 보고자 한다.
정식 명칭은 Universum Film-Aktiengesellschaft. 독일의 영화사. 무성영화시절 최고의 예술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뛰어난 영화들을 제작했다. 베를린에 위치한 이 영화사의 촬영소는 세계 최고의 설비를 갖춘 최신의 촬영소였다. 우파사는 실험정신과 착상이 대담한 카메라 작업을 발전시켰으며,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감독들을 대거 고용했다. 이들 감독들 중에는 수준 있는 코미디물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에른스트 루비치와, 카메라의 위치를 적절하게 이용함으로써 영상의 표현력을 극대화시키는 카메라 기술과 편집기술에 있어서 선구적 역할을 한 G. W. 파브스트 등이 있다. 우파사는 독일 정부가 대부분의 일류 영화사들을 통합했던 1917년에 설립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실험정신과 상상력이 풍부한 로베르트 비네가 감독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The Cabinet of Dr. Caligari〉(1919)과 같은 공포영화들이나, 카메라를 주관적 관찰자로 사용했던 실험영화로서 F. W. 무르나우가 감독한 〈마지막 웃음 The Last Laugh〉(1924)과 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소재로 한 사실주의 영화들 및 전통적인 독일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들이 특히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1925~30년에 많은 감독들과 배우들이 미국으로 이주했고 미국의 기업들로부터 자금대부와 협력이 있었지만, 우파사 촬영소의 재정상태는 약화되어갔다. 1927년 우파사의 지배 주식이 알프레트 휴겐베르크에게 매각되었는데, 그는 보수주의적인 신문사의 소유주였으며, 뒷날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지지자이기도 했다. 1938년경 나치 정부는 영화산업을 완전히 장악했고, 우파사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선전용 도구로 사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나치 정부는 사라지게 되었고, 우파사 역시 문을 닫았다. 그러나 동베를린에 위치해 있었던 우파사의 촬영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화제작의 중심지로 남아 있다. <DAUM 지식사전 발췌> 할리우드는 그 당시에도 이미 세계 최강이었다. 특히 대공황 시기 다른 산업들이 지리멸렬하면서 추운 겨울을 맞을 때, 유일하게 번창했던 산업이기도 하다. 전 세계를 흔든 경제공황 속에서 대중은 현실을 잊고 배고픔과 추위를 잠시라도 망각하기 위해 이 새로운 대중 문화에 기꺼이 몸을 맡겼고, 할리우드는 당시의 히트작 <킹콩>처럼 괴물이 되어갔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비록 영락해 가고 있었지만 아직 유럽의 거장들과 거대 영화사들이 건재했었고 이 힘의 균형이 깨어진 것 역시 세계대전의 결과물이다. 우파는 독일 표현주의 고전의 산실이었고 그레타 가르보 같은 고전 여배우들이 득실거렸고, 새로운 촬영기법과 테크닉의 보물창고였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우파의 전성기는 나치의 프로파간다 정책이 가장 기승을 부리던 때의 것이다. 제 3제국의 후원(과 통제) 아래 우파의 스튜디오는 할리우드의 그것에 비견할 유일한 것이었고, 국가권력의 지원은 수만 명의 엑스트라를 무보수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아래서 전쟁 막바지까지 대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타란티노가 영국군 전직 영화평론가 중위의 입을 빌어 말하듯 당시의 독일 영화산업은 비록 프로파간다의 혐의를 올곧게 입증해주지만 그와는 별개로 상당한 성취를 이루고 있었다. 일라이 로스가 연출한 영화 속 영화 <조국의 영광> 같은 기법적으로는 탁월한, 하지만 미학적으로는 절망스러운 대작이 종전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쏟아져 나왔으며 이는 미국이건 소련이건 영국이건 비슷한 상황이었다.
필름으로 역사에 족적을 새겼으며 그 굴레에 평생을 매여서 살아야 했던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 그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책,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오드리 설킬드 (지은이), 허진 (옮긴이) | 마티 | 20,000원 을 추천한다. 그녀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된 평전이다. 또한, 그녀를 옹호하는 일각의 흐름에 대해서 몇 해 전 작고한 저명한 평론가 수잔 손탁이 <우울한 열정> 수잔 손택 (지은이), 홍한별 (옮긴이) | 이후 | 16,000원 책의 2장 ‘매혹적인 파시즘’ 부분에 잘 다루고 있으니 꼭 함께 읽어 보시라. 그녀는 전범 혐의로 몇 년간 수난을 치른 뒤 심해촬영과 아프리카 부족 촬영으로 100살이 넘는 여생을 보냈다. 그녀의 작품들은 세계 다큐멘터리 영화사 최대의 논란이다.
<올림피아>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기념 다큐멘터리다. 이 두 작품에 픽션은 없다. 오직 사실만을 담았다. 단 편집해서. 사실을 여기저기 잘라 붙이는 것만으로 현실의 왜곡이 가능해질 수 있음은 다큐멘터리 필름의 시작부터 거듭된 논쟁이지만 이 두 편의 작품은 그 완성도와 대중적 파급력이 워낙 대단했기에 논쟁의 핵심에 설 수 밖 에 없었다. 직접 이 두 작품을 보고 나서 과연 다큐멘터리의 진정한 의미와 작가의 개입이 어느 선까지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두 작품 모두 워낙 오래된지라 저작권이 소멸해서 합법적 리핑(?!)으로 국내에 출시되어 있다. 위 논란은 근래 들어서는 마이클 무어의 작업들에 대해 가해지고 있으니 한번 무어의 작품들에 대한 비판과 연계해서 생각해봐도 좋을 법하다. 영화 속에서 유독 ‘등산’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레니 리펜슈탈을 포함한 독일 산악영화의 흐름에 대해서도 간단히 살펴보자면, 독일 산악영화는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자연, 특히 웅장한 산악의 경관을 묘사하고 여기에 도전하는 인간을 드러내는데 리펜슈탈이 배우로 출연한 아르놀트 팡크의 <성스러운 산> 이나 그녀가 연출한 <푸른 빛>등이 유명하다. 불행히도 국내에 출시된 작품은 없다. 영화의 역사에 대해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는 화려한 대사와 이미지의 향연 그 자체인데 심지어 1924년작 F. W. 무르나우의 고전 <마지막 웃음>의 주연배우였던 당대의 대배우 에밀 제닝스를 픽션이지만 시사회에 참여시키기까지 한다. 히틀러가 직접 참여한 <조국의 영광> 시사회에서 히틀러와 나치 수뇌들은 미군이 무차별적으로 저격당해 비참하게 죽는 클로즈업을 박장대소하면서 바라보는데 이는 이들 프로파간다 필름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이런 종류의 선동영화는 전쟁당사자 국가들에선 남 탓할 일 없이 다 찍어대고 있었다) 챕터 5.에서 잔뜩 클로즈업된 졸러 일병의 영화 속 모습과 뒤이어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그로테스크함을 얼굴에 구현한 쇼사나의 스크린 등장은 1920년대 후반 독일 표현주의영화의 전통, 무르나우와 프리츠 랑의 재현 그 자체이다. ※ 특히, 실제로 영화 속 현실에선 그 시점에서 이미 살아있지 않은 두 남녀가 영화 속에선 생생하게 흑백영화의 특징인 선명한 이미지 클로즈업 속에서 살아있는 자들을 장악한다. 흑백영화의 미덕을 제대로 구현한 명장면이라 단언한다. 21세기에 그 이미지를 재현해 내다니. 특히나 챕터 4.의 인상 깊었던 지하 바에서의 대화, 억양을 둘러싼 논란은 하나로 통합되기 이전의 유럽에서 억양의 차이 문제를 정교하게 지적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런 종류의 묘사는 과거 영어로 독일군과 미군이 대화하는 게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던 고전 전쟁영화에 비길 수 없는 디테일함이다) 또한 영화의 컷으로 위기를 일차 모면하는 그 세부적인 상세함은 영화학적으로도 충분히 쓰일 데가 많아 보인다. 모방과 베끼기도 수준이 올라가면 종국에는 고전과 신화로 회귀하게 되는가보다.
혹은 악인이 더 잘 잔다. * 이 글은 영화 속에서 불타는 니트로 필름에 못지않은 다량의 스포일러를 흘리고 있으니 영화 보시고 나서 읽어주시길 간곡히 당부합니다. * 이 영화는 어마어마한 양의 방대한 데이터를 숨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도 쓸데없이 깁니다. 현학적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영화 자체가 아는 만큼 보인다. 메롱 ~ 하는 악동의 장난질이거든요. -. 기본정보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Inglourious Basterds, 2009)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브래드 피트(“아파치” 알도 레인 중위), 다이앤 크루거(브리짓 본 해머스마크), 크리스토프 왈츠(한스 란다 대령), 멜라니 로랑(쇼사나 드레이퍼스), 다니엘 브뢸(프레데릭 졸러), 일라이 로스(“곰 유태인” 도니) 외 장르 액션, 전쟁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상영시간 152분 -. 줄거리 독일이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린 2차 세계 대전 시기, 나치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태에 분개한 미군 알도 레인 중위는 ‘당한 만큼 돌려준다!’ 라는 강렬한 신념으로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의 재능을 가진 8명의 대원을 모아 ‘개떼들’이란 군단을 만들고 나치가 점령한 프랑스에 잠입해 당한 것에 몇 배에 달하는 복수를 시작한다. 그들의 명성이 점점 거세지며 ‘개떼들’이란 이름만으로도 나치가 두려움에 떨게 되던 어느 날, 알도 레인 중위는 독일의 여배우이자 동시에 영국의 더블 스파이인 브리짓 에게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나치의 수뇌부가 모두 참석하는 독일 전쟁 영화의 프리미어가 파리에서 열린다는 것. 그리고 이 프리미어에 바로 ‘히틀러’도 참석을 한다는 것이다. 한 번에 나치를 모두 쓸어버릴 계획으로 ‘개떼들’은 이탈리아 영화 관계자로 분장해 극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 곳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비밀 임무가 준비되고 있었다. 대충 이런 식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 예상 외로 정교한 고증과 재현된 전시 유럽 영화는 시작되자마자 타란티노가 즐기는 예스러운 자막으로 “옛날 옛적 나치독일에 점령된 유럽에선 ~ ”으로 개시된다. 그래서 배경은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차용하고 대충 무시한 뒤 총질과 칼부림으로 메꿔 버리겠지 하던 선입견은 영화에서 버려야 한다. 이 영화의 역사 고증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까지는 아니지만 입맛 까다로운 2차 세계대전 매니아들의 구미를 웬만하면 채워 주는 현란한 이미지의 향연을 제공해주니까. 그런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에 몇 가지만 짚어 보겠다. 챕터 1.에서 농가를 방문한 한스 란다 대령은 정중하게 가정방문을 시작한다. 그는 얌전하게 군모를 벗어 책상에 놓는다. 그 순간 모자 정중앙에 박힌 해골마크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에 관심이 깊다면, 특히나 히틀러의 직속군대 무장친위대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별 것 아닌 컷 하나에 탄성을 지를 것이다. 바로 무장친위대의 주요 사단 중 하나인 토텐코프의 상징이니까. 그리고 이 토텐코프 사단은 원래 친위대 중에서도 경찰 부대로서 초창기 유태인 탄압에 일조한 부대이기도 하다. ※ 의외로 무장친위대는 유태인 탄압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유태인 탄압을 전문으로 한 단위는 독일의 보안경찰을 산하에 둔 속칭 게슈타포였고 군대 내에선 <아인자츠 그루페>라는 직속 코만도 부대가 전쟁터에서 민간인 학살 등을 전문으로 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디스라이히>나 <히틀러 유겐트> 사단들은 의외로 전투 그 자체에 몰두하는 편이라서 전쟁 후반에 포로 학살 등의 혐의는 있을지언정 워낙 싸우느라 바빠 유태인 잡으러 다닐 틈도 없었다고 한다. 챕터 2.에서 개떼들의 일원이 된 전 독일군 상사 휴고 스티글리츠는 MG-42를 건장하게 메고 있다.
그렇다. 역시 독일군이라면 진리의 MG-42다. ‘히틀러의 전기톱’이라 불리며, 아마도 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많은 보병을 죽였을 독일군의 무기가 바로 이 MG-42와 바로 앞전 모델인 MG-34이다. ※ 오시이 마모루가 쓴 <켈베로스 3부작>의 주인공인 수도경 특수기동대의 주력무장은 MG-34, 후일에 이를 본 따 만든 자위대의 중무장보병대의 주력무장은 MG-42이다. 7.92mm 구경의 이 기관총을 2차 대전 이후 창설된 서독군은 7.62mm 구경으로 개조해 거의 개량 없이 그대로 MG-1이란 이름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MG-3에 이르도록 MG-42의 기본 구조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사실상 MG라는 이름 자체가 Machine Gun이다. 진정한 퓨어 머신건, 그리고 GPMG : 일반목적 기관총 (General Purpose Machine Gun)으로서 쌍각대를 세우면 거의 SAW 수준의 분대지원화기로, 삼각대를 정교하게 꽂으면 중기관총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만능 기관총이다. (K-3 경기관총의 대선조 격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노르망디 해안에서 뒤뚱거리는 미군을 도살한 병기가 바로 이 것이다. 사람을 많이 죽여 명성을 쌓기로는 1차 세계대전 당시의 맥심 중기관총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피의 예술.
병기는 MP-40 기관단총(서브머신건)이다. 개머리판이 없고 길쭉한 탄창을 가진 이 독일보병의 친구는 독일군 보병화력을 개선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고 그만큼 많은 적군을 살상했다. ※ 이에 대항해 나온 기관단총이 후대에 “따발총”으로 불린 전설의 PPSH 시리즈이다. 두 기관단총은 구경에서 차이가 나는데 독일이 권총탄 호환되느라 9mm 인데 반해, 소련은 권총탄까지 특이하게 7.62mm를 쓰던지라 기관단총도 7.62mm 이다. 전쟁 초반 이후 성능도 좋고 노획한 것도 적지 않았던 독일군에서는 이 따발총을 개량해서 9mm 구경으로 개조 활용하기도 했고 거의 그대로 쓰기도 했는데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이 이 총을 거머쥔 사진이 워낙 많이 나와서 사실을 잘 입증해주고 있다. 좁은 장소, 술집이나 극장 내에서 이 총을 갈기면 상당한 지역 제압효과가 나오는데 영화는 이 기관단총의 특성을 잘 살려주고 있다. 이러니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으리.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우화 수준의 영화라고 말하지만 결코 타란티노는 대충 찍지 않는다. 브라보 ~ !!!
위계질서와 이중적 태도 주인공인 비커스는 백인 치고는 이름이 특이하다. 이름을 정식으로 표기하면 Wikus Van der Merwe 이다. 주인공 비커스의 외모와 행동방식은 거의 100% 80년대 기독교 아프리칸스인(아프리카너)로 묘사된다. 남아공 내에서 멍청한 아프리칸스 남자를 부르는 속어가 반 더 메르버(Van der Merwe) 조크라고 한다. 영화를 본 감상평 중에서 남아프리카에서 살던 이들이 쓴 글을 보면, 영화 내내 아프리칸스 인을 비하하는 속어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최초에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 지역을 장악한 백인은 네덜란드 인들이었다. (물론 그 전에는 희망봉을 발견한 바르돌로뮤 디아스와 바스코 다 가마의 후예인 포르투갈 인들이 요새를 짓고 상주한 바 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정책을 펴던 헤게모니 국가 영국은 우리 세계사 교과서에도 나오듯 프랑스의 아프리카 대륙 동서로 가로지르기를 방해하면서 이집트에서 남아공까지를 세로로 죽 내려오기로 결심했고, 희망봉이라는 지정학적 중요성과 각종 광산의 보고인 이 요충지를 네덜란드계 백인 (보어인)들에게서 빼앗기 위해 전쟁을 도발해 결국 이 지역을 강제로 합병한다. ※ 초기에는 지금의 짐바브웨 지역을 장악한 영국 아프리카 회사의 수장 세실 로즈가 민간용병을 이용해 남아프리카 지역의 보어인 자유국을 강제로 합병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수차례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결국 영국 정규군이 투입되어 지난한 정복전쟁을 걸친 다음에야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실 로즈의 헛된 욕망은 짐바브웨가 독립하기 전까지의 식민국가 이름이던 <로디지아>로 역사에 남았다. ※ 영국 제국주의 정책의 상징, 윈스턴 처칠이 젊은 시절 이 전쟁에 참전해서 포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 때 탈출에 성공하고 이 과정을 르포 형식으로 신문에 기고해 큰 명성을 얻고 이후 정계에 입문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었다. 주인공 비커스는 바로 이 보어인, 아프리칸스인의 전형적인 표상으로 설정된다. 반면에 그의 상관들, 그가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자 비커스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이들은 전형적인 영미 계 백인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남아공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백인들 중에서도 영국계가 최상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토박이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계 아프리칸스 인들은 백인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하층민이다. 정치적-경제적 입지 모두 그러하다. 100년 전 보어전쟁 당시에는 같은 백인인 영국군이 아프리칸스 인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강제 이주 및 수용소 수준의 정착촌 정책을 강요한 바 있는데 - 마치 히틀러의 인종분리정책을 당했던 유태인들이 중동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대로 가한 것처럼 -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분리 독립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프리칸스 인들은 이를 그대로 흑인들에게 적용했다. 그리고 경제적 부를 독점한 영국계 백인들에 대해 결코 아프리칸스인과 흑인들은 거시적 관점에서 손을 잡은 적이 없다. 다시 주인공 비커스의 태도로 되돌아가 보자. 주인공 비커스가 외계인들을 대하는 초반의 태도를 보면, 언어가 소통되는 고등한 상대방에 대해 마치 백인 노예주가 흑인 노예를 대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흑인 노예를 미워하지 않지만, 동등한 존재로 보는 게 아니라 잘 해줄 땐 불쌍해 보여서 그런 것이고, 너무 잘 대해 주면 기어오르거나 귀찮아진다는, 딱 그 수준의 인식과 태도이다. 비커스가 초반에 책임자 완장을 찬 채 우쭐대면서 카메라 앞에서 강제 퇴거 동의서를 외계인들에게 받을 때를 보면, 우선 당사자 동의 서명을 해달라고 명목상 공손하게 요구를 하지만 서명을 거부하는 순간 다양한 방법으로 협박을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수단을 다 활용한다. 외계인 부모에게서 자식을 여하간의 명목을 붙여서 빼앗아 보육원에 넣겠다고 말한다. 폐가 수준의 가옥이지만 갖은 검사규정을 내세우면서 불법이라고 윽박지른다. 심지어 비커스는 자신이 외계인으로 변이되고 있지만 여전히 외계인들에 대한 불신과 비하를 버리지 않는다. 그는 필요할 때면 외계인들에게 도와달라고 애걸하지만 자신의 욕구 -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 - 를 위해 외계인을 등쳐먹을 궁리를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비커스가 악인은 아니다. 그는 아내를 만나고 싶어 눈물 흘리고 부당한 대우에 정당한 분노를 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러나 그의 존중과 수용의 대상에서 외계인은 빠져 있다. 그의 인식과 환경에서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백인에서 흑인으로 바뀌는 비커스의 정체성 그러나 비커스는 점차 그가 인간 이하로 취급하던 외계인에 가깝게 변이되어갈수록 점점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된다. 물론 그는 여전히 인간으로 돌아갈 궁리가 최우선이긴 하지만, 나중에는 그를 도왔던 외계인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고 외계인들이 우주선으로 지구를 탈출하려는 시도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려 한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비커스는 자신을 집요하게 추격하던 용병대장의 손에 죽임을 당할 위기에서 외계인들에 의해 구출된다. 그 순간 그의 한쪽 눈은 외계인의 그것으로 완전히 변해 있다. ![]() 과정은 흔히 과거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에서 노동자가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식하는 계급의식 구현 과정에 그대로 대입해도 될 정도이다. 비커스가 9번 구역으로 도피해서 홀로 폐가에 들어가 - 그가 그토록 철거하려 노력하던 바로 그런 가옥 - 넝마를 덮고 잠자리에 들 때 모습은 실로 처량하다. 하지만 그가 변이를 일으킨 순간 그가 그나마 잠시라도 눈을 붙일 수 있는 장소는 오직 외계인의 폐가일 뿐이다.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인, 비커스가 햄버거 가게에서 주문을 거부당하고 쫓기던 중 9번 구역으로 들어와 처음 먹는 식사장면에서 게걸스레 먹던 음식은 바로 인간들이 외계인을 멸시하며 길들여온 먹을거리, 고양이밥 통조림이었다. 그렇게 비커스는 점점 그가 멸시하던 대상들과 동일한 환경으로 편입해 들어간다. ![]() 도움을 간청하던 외계인 가족을 계속 등쳐먹는 것을 보면 단지 환경과 처지가 변한다고 해서 그에 맞는 의식을 저절로 주입받는 것은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환경과 자아의 조응, 그리고 치열한 일상의 고민들 속에서 스스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다. 비커스의 외계인으로의 변이 과정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영화 막판에 비커스는 완전히 외계인으로 변이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외계인으로 바뀌어 있다고 해서 비커스는 비커스가 아닌 존재가 된 것일까. 비커스의 인간 시절 아내는 어느 날 금속 폐품으로 된 꽃을 받는다. 그 조화는 비커스가 10번 구역의 쓰레기 더미에서 만든 것이다. 그 자신이 인간 이하로 멸시하던 외계인으로 변했지만 비커스의 인간성의 고결한 부분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과연 비커스는 그가 목숨을 걸고 탈출시킨 외계인들이 돌아와 그를 인간으로 돌려주겠다고 하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의 선택이 궁금하다. 다양한 은유와 변주의 장, 대중예술로서의 <District 9> 이 영화에 대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역사와 현실을 중심으로 거칠고 서툴게 서술해 봤지만, 약간의 배경만 이해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다양한 측면에서 인권문제와 계급갈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교재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9번 구역의 강제 이주와 철거에 대해서는 용산으로 대변되는 도시빈민과 철거민 문제를, 비커스의 정체성 변화 부분은 노동자계급과 계급의식 각성에 대한 토론을, 그리고 외계인과 외국인에 대한 남아공 국민들의 인식과 대접은 인종주의와 이주민 문제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 있다. ※ 2009년에는 상당히 많은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상영되었다. <반두비>나 <로니를 찾아서> 같은 영화들은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불만이라면, 이들 영화들은 소통과 인간이라는 화두에 집중하다 보니 구조의 문제에 대해선 아직 ‘세게’ 들어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느끼곤 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 <District 9>는 SF 영화의 틀 속에서 다양한 ‘구조’의 문제를 은유적으로나마 짚어낸다는 측면에서 위에서 언급한 ‘착한’ 영화들과 대구를 이루며 부족한 면을 채워줄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든다. 결국 이주노동자의 문제건, 노동자의 자기 각성이건 동정과 연민, 이해가 시작이지만 결국은 체험과 자각으로 귀결되어야 하게 마련이다. ※ 한계도 있지만 대중적으로 한국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들에 대한 대중적 영상교재로서 독보적인 지위를 가진 국가인권위의 인권영화 연작 “시선” 시리즈의 영어 제목이 'If you were me 당신이 만약 나라면' 이라는 것을 DVD를 훑어보다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 비커스는 외계인이 됨으로서 많은 것을 잃었지만 오히려 공무원일 때보다 더 고결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비커스가 쓰레기 더미에서 꽃을 만들던 마지막 장면은 잔뜩 폼을 잡고 날로 주입받은 무술자세를 취한 <매트릭스>의 거짓 구원자 네오보다 더 장엄해 보인다.
![]() ![]() * 감상에 해가 되는 스포일러가 충만한 글입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얼른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 온라인에 게시된 몇몇 감상기를 심하게 차용해서 짜깁기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9번 구역에서,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 된다! 디스트릭트 9 (District 9, 2009) 감독 닐 브롬캠프 제작 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 “킹콩”) 주연 샬토 코플리 (비커스 역) 장르 SF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상영시간 112분 이 영화는 SF 영화다. 외양상 블록버스터 급이다. (하지만 제작비는 3천만 달러, 이 정도 시각효과를 만들기 위해 요즘의 헐리우드는 1억 달러는 가볍게 들어간다. 그런 면에서 꽤나 알뜰한 살림살이다) 그에 걸맞게 화끈한 추격 장면과 전투로봇이 20 ~ 30분 넘게 등장하는 액션활극이 후반을 장식하고 있다. (거짓말 좀 보태면 거의 <트랜스포머> 수준이다) ![]() 등장한다. 영화 도입부의 거대 모선은 <인디펜던스 데이>의 그것과 거의 동일한 사이즈를 자랑한다. 또한 곤충 형태의 외계인들 형상은 마치 <스타쉽 트루퍼즈>의 버그들이 인간 형태로 진화를 했다면 가졌을 형상 및 종족유형과 흡사하다. 양파껍질 벗기듯 이제 9번 구역으로 들어가 보자. 줄거리 20년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초거대 우주선이 출현한다. 공중에 정지한 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우주선에 침입한 인간들은 지도자들이 사라진 채 질병과 기아에 시달리는 100만 명의 외계인들을 발견하게 된다. 정부 당국은 요하네스버그 교외에 District 9, 곧 9번 구역을 설정하고 이곳에 외계인들을 집단 수용하게 된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 이제 외계인들은 180만 명으로 불어났고 9번 구역은 빈민굴이 되었다. 이 빈민굴은 인간들의 눈으로 보기엔 지저분하고 불결한 외계인 (인간들은 이들 외계인을 “Prawn”이라고 부른다)들이 판을 치고, 외계인과 불법적인 거래를 하는 나이지리아 범죄조직이 군림하고 있는 흉악 우범지대로 인식되고, 외계인을 담당하는 MNU (거대 다국적기업집단 혹은 관리당국으로 보면 무방함)는 이들 180만 명의 외계인을 District 10, 10번 구역으로 강제 이주시키기로 결의한다. 그리고 이 난제의 책임자로 평범한 공무원 비커스 반 데 메르베가 선정된다. 비커스는 중무장한 호위 용병부대와 함께 9번 구역으로 진입해 외계인들에게 이주 동의서를 받는 작업을 지휘한다. 그러던 중 정체불명의 외계물질에 노출된 비커스는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면서 외계인의 신체로 변하기 시작한다. MNU는 비커스를 감금하고 실험을 하던 중 외계인이 사용하는 무기들을 이미 변이된 그의 오른팔을 통해 사용할 수 있음을 알게 되고 생체실험에 동원한다. ![]() 그러나 비커스는 산 채로 해부당하기 직전 탈출해 도움을 청하지만 아무도 그를 도우려 하지 않는다. 마침내 갈 곳을 잃은 비커스는 그가 강제로 이주시키려던 지역, 9번 구역으로 숨어들게 된다. 거기에서 그는 외계물질을 만든 외계인 크리스토퍼 부자를 만나고 그들은 좌충우돌 갈등을 겪으며 점차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MNU는 비커스의 생체공학적 가치 때문에 용병을 투입해 그를 체포하려 하고, 9번 구역에 군림하고 있던 나이지리아 범죄단도 그를 통해 외계인의 비밀을 소유하기 위해 추격에 나선다. 점차 외계인으로 변해가는 비커스는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도주를 계속한다. 가상현실로서의 SF 영화 <District 9>와 실제 남아프리카의 역사
중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이미 세계 각국에서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영화이다. 근래 SF 대작 영화들이 대부분 만화나 소설 혹은 게임 원작을 갖고 있는데 비해 이 작품은 순수한 창작물에 상대적인 저예산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 게다가 이 영화의 감독은 장편영화를 처음 찍는 79년생 남아프리카 청년이기까지 하다!) 거기에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감독 피터 잭슨이 흔쾌히 제작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넬슨 만델라와 스티븐 비코 ![]() 추모해 피터 가브리엘은 BIKO라는 추모곡을 만들기도 할 정도로 남아공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사후 부활하기도 한 인물이다 - 로 상징되는 인종차별 철폐운동과, 꽃나무가 피어난 정원이 갖춰진 근사한 전원주택에 사는 백인거주지역과 무미건조하게 늘어선 전형적인 닭장 집 동네에 사는 흑인 거주 지역 사진으로 상징하는 남아프리카 역사를 감히 SF 액션 판타지 영화에 고스란히 그 원형을 담아내고 있으며, 심지어 공식적으로는 아파르트헤이트 (1948년부터 1994년까지 지속된 남아공 백인정권의 인종차별 분리정책) 체제가 무너진 지 십 수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경제-사회적 흔적과, 근래 문제가 되고 있는 남아공 내 인접국가 난민 및 이주민 문제까지 일정 부분 짚어내고 있다. ※ 감독 닐 브롬캠프는 2005년에 “Arrive in Joberg”라는 6분30초 분량의 단편영화를 찍은 바 있으며 이 영화의 원작은 아니지만 상당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이 단편은 SF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요하네스버그 지역 내에서 빈민이자 범죄 집단으로 꼽히는 짐바브웨 인들과의 에피소드를 다룬 다큐멘터리 성격의 작품이다. ![]() 이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라는, 현재 아프리카 산업생산의 40%와 전체 아프리카 GDP의 25%를 차지하는 지역 강대국의 과거와 현재를 하나하나 짚어보려 한다. DISTRICT 9와 DISTRICT 6 : 외계인과 흑인의 등가성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흑인 정권이 들어선 후, 고등학교 졸업시험 준비도서로 새롭게 선정되어 현재까지도 교육받은 거의 전 국민이 한번 이상 읽어본 베스트셀러 도서의 제목은 “District 6” 이다. 대충 내용은 이렇다. 남아프리카의 행정수도 케이프타운 변두리에는 백인들에게 밀려난 여러 유색인종들이 모여 사는 구역이 있었다. 이 구역이 바로 6번 구역이다. 전 인구의 75%를 차지하는 흑인과 9%를 차지하는 혼혈인, 2% 남짓한 인도계 등이 모여 살던 곳이다. 그러나 도시가 확장되면서 예전에는 변두리던 이 구역이 노른자위가 되었고, 정부는 이 구역을 강제 철거하고 거주민들을 이주시킨다. 책은 첫째 부분에서 이 구역의 빈곤하지만 생동감 있는 일상을 소개하고, 두 번째 부분에서 독자들이 이 구역 주민들에게 감정 이입이 되기 시작할 즈음에, 세 번째 부분으로 정부의 강제 철거과정에서 더 변두리로 몰려나는 주민들의 비극을 서술해서 인종차별 정책의 악함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DISTRICT 9>는 이 남아공 국민도서의 기본 내용을 곧바로 영화에 삽입해 보여준다. 결국 비커스의 생존을 위한 활극과 무관하게 영화 말미에는 더 좁고 더 인간거주지역과 멀어진 10번 구역으로 이주당한 외계인 Prawn 들의 거주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강제 철거 과정에서 외계인들이 후손들을 위해 곳 태어날 알에 양분을 공급하는 장치를 파괴하고 알이 쌓여 있는 집을 “낙태수술”하는 거라는 농담을 하면서 화염방사기로 불태우고 알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박장대소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과거 나치가 소위 “열외인종”들에게 강제 불임시술을 하던 역사적 기억을 되살리고, 수적으로 열세에 있는 백인정부가 과거에 흑인 인구 증가를 막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잔학한 노력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 대도시 교외에 이렇게 산재해 있던 흑인과 소수인종 거주 지역을 강제로 빼앗은 백인 정부는 이들 구역을 하층 백인들에게 제공했다. 그 결과 백인 기득권층은 자신들에게로 가해질 분노와 증오를 백인 하층집단으로 전가했고, 이후 흑인정권이 등장하는 과도기에 이들 “트리옴프 Triomf” (과거 흑인 거주지역에 살던 네덜란드계 최하층 백인 거주지역)들은 옛 터전을 찾으려는 흑인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중에서 구할 방법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체험한 이들에게 이 영화는 어쩌면 불쾌한 기억으로 다가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백인들에게 갖은 수난을 당하던 자신들의 과거를 곤충을 닮은 외계인을 통해 다시 봐야 한다니 개운한 기억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과거 차별의 채찍을 휘두르던 백인들에게는 그 당시의 흑인 빈민이나 <District 9>의 곤충 형 외계인이나 과연 별반 다르게 보이기나 했을까? 심지어 좀비와 동일시한다 하더라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본다. 서구사회에서 식민지인들이 본토에 대거 이민 오는 것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신문 만화 등을 보면 인간 이하 존재로 비하하는 묘사가 의외로 허다하게 많다. ※ 영화 내내 외계인들을 지칭하는 단어 “Prawn"은 귀뚜라미 과의 곤충으로 몸체크기가 4 ~ 5cm나 되는 꽤 모양이 징그러운 벌레라고 한다. 속된 말로 인간과 같은 언어로 대화가 가능한 지성을 가진 이들에게 “버러지야”라고 부르는 것이다. 일본제국주의 치하에서 “조센징”이라 부르는 것보다 더 심한 비하가 아닌가. 영화는 줄곧 빈민굴 수준의 폐가들이 즐비한 9번 구역과 인간들이 거주하는 요하네스버그 도심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외계인들이 모여 사는 곳은 이미 말했듯이 흑인 빈민가(과거나 현재나 여전히 대규모로 존재하는)를 그대로 모방한 세트이다. 실제로 흑인 빈민들은 정권이 어떻게 바뀌든 간에 딱 그렇게 산다. 아프리카의 대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빈부격차로 현재도 세계에서 유명하다. 백인 부유층 거주 지역은 미국이나 캐나다 도시 외곽의 중산층 거주구역 수준이고 흑인과 극빈층 백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실제로 영화에 등장하는 9번 구역 못지않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6번 구역을 백인 정부가 철거할 때 공개한 이유는 이 구역이 “폭력, 마약, 매춘이 성행하는 곳” 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묘사는 영화 초반에 9번 구역 강제 이주의 명분으로 그대로 등장한다. ※ 외계인들이 환장해서 먹는 고양이밥은 케이프타운 슬럼가에서 유행하는 마약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영화와 실제 사건의 연관성을 은유하는 부분이다. 나이지리아 인으로 상징되는 외국인들에 대한 불신 영화 내에서 줄곧 9번 구역을 장악하고 외계인들을 착취하는 집단으로 나이지리아 인이 등장한다. 영화에서 외계인 다음으로 많이 등장하는 이방인 집단이 바로 나이지리아 인인데 실제로 남아공 내에서 큰 사회문제라고 한다. 실제 남아공 국민들의 정서가 나이지리아 인은 거의 대부분이 ‘사기꾼’, 짐바브웨인은 유사한 비율로 ‘강도’로 취급한다고 한다. 나이지리아 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사기꾼, 마약상인, 그 외에 돈은 되지만 불법적인 행위 전문인 자들’로 찍혀 있으며 영화 내에서도 딱 그대로이다. ![]() ※ 영화 내내 나이지리아 범죄단 두목은 비커스의 외계인 화된 팔을 잘라 먹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이를 부추기는 것은 옆에 찰싹 붙어 있는 주술사이다. 사람의 특정 신체부위를 먹으면 상응하는 효과가 있다는,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괴담 이야기다!) 주술 신앙은 실제로 아직도 아프리카 지역에 퍼져 있는 관습이라고 한다. 사실 흑인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거의 50년간 유지되어 온 (식민지 시절을 포함하면 100년이 훨씬 넘는 기간이다) 소수 백인(전 인구의 14%) 중심의 기득권과 경제적 부의 독점 때문에 대다수 흑인들의 경제적 형편은 여전히 빈궁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상층 기득권 집단은 이러한 불만과 분노를 교묘하게 회피하기 위해 적당히 외국인들에 대한 테러를 묵인하는 실정이다. 남부 아프리카 최대의 산업규모를 차지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주변국의 난민과 이주노동자를 블랙홀처럼 흡수하고 있는데, 난민의 경우 정치지형이 불안하고 내전이 빈발하는 주변 약소국에서 종족 단위로 통째로 피난 와서 수십 년 째 머무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주노동자의 경우 농번기에는 마을에서 농사를 짓다가 농한기에 남아공으로 와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는 하층 계약직 노동자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08년 5월에는 일주일 간 남아공 전역에서 대대적인 외국인 테러가 발생해 60여 명이 살해당하는 등 큰 문제가 되었는데, 주요한 원인으로 부패한 남아공 정부 관리들이 과거 흑인들이 살다가 쫓겨난 지역 (6번 구역 같은)에 원 주민들을 정착시키지 않고 웃돈을 받고 외국인들(남아공 인접국 난민이나 이주민)에게 임대주택을 파는 등 부정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부당국에 대한 항의와 시위로 집결되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흑인 빈민들의 증오는 자기들의 터전을 외국인들이 빼앗아갔다는 선동에 휩쓸려 참극을 낳았다. 그리고 마치 지난 LA 폭동 때처럼 백인들에 대한 분노로 들고 일어난 흑인들의 파괴와 약탈을 한국인 거주 지역으로 돌려서 화를 모면하려 했던 백인들의 은밀한 시도와 같이 남아공 정부와 경찰은 외국인 살해와 테러를 저지른 범인들을 수사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로 시종일관했다고 한다. 이에 분노한 아프리카 지역의 미디어 운동가들이 모여 다양한 각도로 이 사태를 조명하고자 한 시도가 다큐멘터리 연작 <인종차별과의 전쟁 Filmmakers Against Racism>이다. ![]() ※ 이 작품 역시 세계 최초로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소재로 풀어내 인상적이었던 이 작품은, 1) 외국인 난민촌에서 대안학교를 여는 이야기, 2) 가해자로 낙인찍힌 남아공 흑인 빈민들의 입장 확인, 3) 피난을 떠났다 다시 돌아왔지만 여전히 위험한 일상에 노출된 외국 난민들의 체험, 4) 테러에 의해 살해당한 가난한 이주노동자의 흔적 찾아가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시 국내에서 영화제 이후 상영 혹은 출시 예정은 전무하다. 여전히 남아공 경제의 대부분을 쥐고 있는 백인 기득권층은 15년 간 흑인 정부를 길들이고 부패하게 만들었다. ※ 넬슨 만델라는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비난을 겪지 않고 무난히 임기를 마쳤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 움베키 대통령 시절부터 ANC 당이 집권한 남아공 정부의 부정부패 스캔들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빈부 격차는 정치적인 인종차별 해소에도 불구하고 계속 심화되고 있으며 지표상의 성장과 무관하게 사회갈등은 심각하다. 이런 불만이 끓어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사회적 약자들을 공격하게 만드는 것은 역사적으로 기득권층이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수단이다. 남아공의 산업 규모가 커지고 주변 국가들의 종속성이 높아질수록 이 문제는 더욱 뿌리까지 곪아가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4% 백인들과 극소수의 흑인 신흥 기득권층이 지배하는 체제인 것인가. 사실 남아공의 백인들도 단일한 기득권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 ※ 이것은 이스라엘의 유태인들도 똑같다. 그 안에 출신지역이나 부에 따른 차별이 엄연히 존재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다. 서유럽이나 미국 출신 유태인들이 최상층이며 동유럽 출신이 그보다 낮은 신분이다.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육두품 혹은 가야 상층 유민 정도라고나 할까. 중동 지역 출신은 더 낮은 대접을 받고 있으며, 최하층은 에티오피아의 흑인계 유태인들이다. 이들 흑인 유태인에 대해 이스라엘 국가 내에서는 이들을 유태인으로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놓고 사반세기 동안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의 기독교를 믿는 - 콥트 교파라고 한다 - 이들 흑인들은 자신들의 시조를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후손들이라고 한다. ![]() <만화 호빗 The Hobbit > 지은이 존 로날드 로웰 톨킨 그린이 데이비드 웬젤 옮긴이 이미애 출판사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9-10-16 정 가 12,500원 -.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호빗』, 그리고 『반지의 제왕』 톨킨의 이야기가 전 세계를 매료시킨다! 웅장한 대서사시 『반지의 제왕』의 프리퀄, 『호빗』 절대반지와 골룸의 출현, 프로도의 양아버지 빌보의 모험 이야기! 소설 『호빗』(1937년)은 『반지의 제왕』(1954~1955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세계 3대 판타지 소설가로 불리는 J. R. R. 톨킨의 작품이다. 이 소설은 원래 톨킨이 자기 자녀들에게 들려주려고 만든 동화였는데, 전 세계적으로 어느 연령층의 독자에게나 사랑과 칭송을 받게 되면서 판타지 소설의 고전으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톨킨은 이 소설이 출판되고 나서 거의 17년 후에 발표한 『반지의 제왕』에서 이 세계를 더욱 복잡하고 정교하게 발전시켜 방대한 신화적 체계를 창조했다. 이런 점에서 『호빗』은 그의 신화적 세계의 출발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호빗』은 용에게 빼앗긴 보물과 영토를 찾으러 떠나는 난쟁이들의 모험에 빌보라는 호빗이 우연히 모험에 동참해 온갖 고생을 하다가 결국 성공적으로 모험을 마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만으로 『호빗』은 너무나 매력적인 이야기지만, 절대반지의 출현, 골룸과 빌보의 만남, 지혜롭고 박식한 엘론드가 등장해 『반지의 제왕』의 서막을 알린다.
영화 『호빗』의 감동을 그래픽 노블로 미리 맛본다! 영화화가 결정되었다. 영화 <호빗>은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 감독과 <헬보이 1, 2>, <판의 미로>로 유명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참여한다. 연이어 개봉될 예정이다. 이미 예전 반지의 제왕을 촬영했던 뉴질랜드에서는 영화 호빗의 세트 건설이 한창이다. <반지의 제왕>에 출연했던 이안 맥켈런(간달프 役), 휴고 위빙(엘론드 役) 등 예전 출연진들의 출연 여부도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전 세계의 톨킨 팬들이 공사가 시작된 호빗 마을을 보며 ‘가운데땅’의 재탄생에 흥분하고 있다. 이 책은 J. R. R. 톨킨의 『호빗』을 만화로 구성한 그래픽 노블이다. 『호빗』의 아기자기하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낸 이 책은 기존 톨킨의 독자들에게 다시금 감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톨킨의 작품을 만화로 쉽게 접할 수 있어 아이들도 톨킨이 그려내는 흥미진진한 모험과 환상의 세계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불평불만 난쟁이들과 소심한 호빗 빌보의 위험천만 모험 이야기 ![]() 난쟁이들과 간달프가 찾아온다. 그들은 무서운 용 스마우그가 지키고 있는 보물을 찾아 떠나자고 하고, 그때부터 빌보의 험난한 모험이 시작된다.
난쟁이들로부터 채소장수라고 무시당하는 빌보. 그는 모험의 길에서 난쟁이들을 구해주고 반지를 찾게 되면서 도둑으로서의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지은이 소개 / J. R. R. 톨킨 1920년대 초, 학생들이 낸 시험지를 채점하던 톨킨은 문득 카펫에 난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문장 하나를 써 내려 갔다. “땅에 난 구멍 속에 한 호빗이 살고 있었다.” 20세기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호빗>과 <반지의 제왕>, <실마릴리온>의 모태이자, 그가 평생 호흡하고 창작한 신화의 세계인 ‘가운데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톨킨은 1892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나 고국인 영국에서 성장하여 세계적인 언어학자이자 영문학자로서 옥스퍼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20대 후반에 이미 기본구상을 마친 ‘가운데땅’ 신화는, 그 자신이 말하듯 뜨거운 생명의 피로 평생토록 쓰여 져, 위의 판타지 걸작 3부작 외에도 <후린의 아이들>, <시구르드와 구드룬의 전설>, <로버랜덤>, <위험천만 왕국 이야기> 등으로 이어졌다. 종종 20세기의 세익스피어로 비견되는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 4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수천만 부가 판매되었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창적인 상상력과 풍부한 감동으로 시간이 갈수록 현대 문학계와 독자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톨킨은 1972년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고, 옥스퍼드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73년에 81세로 별세했다. ![]() 그린이 소개 / 데이비드 웬젤 데이비드 웬젤은 이 책 <호빗>과 커트 부직의 <마법사의 이야기> 같은 환상소설이나 전설들을 세밀하게 연출해서 찬사를 받아 왔다. 그가 그린 책은 중세 고전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부터, 미국의 독립을 이끌어낸 사건을 다룬 <자유의 나무>에까지 다양하다. 그가 뛰어난 상상력으로 그려낸 수채화와 아크릴 화는 소장하려는 이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옮긴이 소개 / 이미애 현대 영국소설 전공으로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조셉 콘라드, 존 파울즈, 제인 오스틴, 카리브 지역의 영어권 작가들에 대한 논문을 썼고, 역서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톨킨의 <호빗>, <위험천만 왕국 이야기>, <반지의 제왕>(공역), 제인 오스틴의 <설득>과 오스틴 전작 여섯 권의 발췌본, 조지 엘리엇의 <아담 비드> 등이 있다. --------------------------------------------- ![]() 2002년에 <톨킨의 호빗>이란 이름으로 비앤비(B&B) 출판사에서 나왔던 그래픽 노블 구판이 절판되고 톨킨 재단 공식 라이센스를 갖고 있는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사에서 새로운 판본으로 호빗의 그래픽 노블 버전이 재출간되었습니다. 구판도 번역이 약간 매끄럽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기본 내용을 이해하는 이들이라면 즐겁게 볼 수 있는, 그래픽 노블 최고의 미덕인 눈앞에 펼쳐진 원작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버전이었습니다. 이번에 신판이 나오면서 가격도 역시나 1/3 정도 인상이 되었지만 이전과 다른 커버 디자인 등으로 차별화는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습니다. 특히 <반지의 제왕>과 <호빗>의 국내 번역을 책임 담당한 이미애님의 번역이 기존 판본과 어떻게 달라졌나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이겠지요. <호빗>은 중간계 이야기의 출발입니다. 전설적인 일화, 문득 톨킨의 머릿속에서 툭 튀어나온 한 구절, “땅에 난 구멍 속에 호빗이 살고 있었다.”는 “유레카”에 필적할 역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피터 잭슨의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연출된 <반지의 제왕> 삼부작 이후 이 거대한 가상의 공간과 그 역사에 대한 영상화 가능성은 현실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제 자연스럽게 <호빗>의 영화화가 피터 잭슨 제작, 역시 판타지 장르에 있어 고수로 꼽히는 길예르모 델 토로의 연출로 근 미래에 선보일 예정인데, 중간에 쉬어가는 겸 해서 이 그래픽 노블로 미리 그 시각적 체험을 맛 뵈기로 즐겨도 좋을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 웬젤의 원화는 <반지의 제왕> 영화와는 다소 질감이 다르지만 고풍스럽고 좀 더 현실적입니다. - 사실 모험을 떠나던 프로도의 나이는 50대였습니다. 그런데 영화로 먼저 접한 이들에게 프로도는 영원히 일라이자 우드의 젖살 캐릭터로 기억되어버리는 거죠. - ![]() 거기에 <반지의 제왕> 만큼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들, 특히 곰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호걸 베오른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레골라스의 인간 버전인 명궁 바르드의 신기의 활솜씨, 그리고 마지막 남은 용들 중 가장 강력한 황금빛 스마우그의 모습을 <호빗>을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반지의 제왕>에서 이미 만났던 캐릭터들, 빌보와 간달프, 엘론드는 이 프리퀄에서도 건재합니다. 또한, 레골라스의 부친인 어둠숲 북쪽 왕국의 스란두일 왕과 <반지의 제왕>에선 극히 미미한 역할 밖에 맡지 못한 드워프 종족에 대한 자세한 묘사도 곁들여질 예정입니다. <호빗>은 17년 후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반지의 제왕> 과는 다소 다른 각도로 봐야 합니다. <반지의 제왕>이 톨킨 자신은 부정하지만 2차 세계대전과 그 이전 파시즘의 발호 등을 겪은 저자의 무의식이 반영된 것처럼 심각해지고 격렬해졌지만, <호빗>은 다소 편하게 동화 형식으로 쓰여 있습니다. ![]() 규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등장한 이후 작가인 톨킨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향과 변화가 일어났고, 그 결과 톨킨 자신의 작품세계는 물론, 판타지 문학의 새로운 신세계가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역시 채점을 하다 졸음을 참지 못한 톨킨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한 구절은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 이제 빌보와 간달프, 13명 드워프의 장대한 모험을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티저 예고편이 다시금 우리 곁으로 미확인 근접접근 중입니다. 그저 질러야할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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