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크한 병장기, "사슬낫" 이야기(2)

이 사슬낫을 가장 후대에 알리게 한 존재는

전술한 것처럼 미야모토 무사시인데 그와

사슬낫의 달인 시시도 바이켄과의 대결에 대해선

일본의 국민소설가 시바 료타로가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한 바 있습니다.


아래는 소설을 발췌해 올려봅니다.


봄이 되자 그는 에도를 향해 길을 떠났는데,

그 도중에 이가 지방에 들렀다.

이가의 우에노라는 성곽 마을에 여장을 풀고

여관에서 이런저런 소문을 듣던 중 이 지방에

기이한 무기가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긴 쇠사슬의 양쪽 끝에 각각 낫과 쇠뭉치를

단 구사리가마라는 것이었다.


“그게 어떤 무기요?”


무사시가 여관 주인에게 묻자, 주인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일종의 특수한 낫이라 할 수 있는데,

낫자루에 여섯 자의 쇠사슬이 이어져 있고

그 끝에는 추가 매달려 있죠.

이 무기는 왼손으로 낫을 잡고 오른손으로

쇠사슬을 잡는답니다.

그 쇠사슬을 힘차게 휘둘러 끝에 매달린

추로 상대의 머리를 가격하죠.

만약 상대가 칼을 들고 달려들면 쇠사슬을

던져 받아치거나, 아니면 칼을 낚아채기도

합니다. 그리고 상대가 쇠사슬에 휘감겨

끌려오면 재빨리 몸을 날려 왼손의 낫으로

상대의 목을 베어버리는 거죠.“


무사시가 재차 물었다.


“오쇼는 누구요?”


오쇼란 검법의 최고 스승을 일컫는 말로,

그 당시에 사용되던 특수한 용어다.


“시시도 님이죠.”


무사시는 당장 만나고 싶었지만 마땅한 연줄이

없었다. 결국 그는 직접 부딪쳐보기로 했다.

무사시는 구사리가마를 구사하는 기술을 보고

싶었을 뿐, 시시도와의 시합은 원치 않았다.

그런 낌새를 눈치챈 여관 주인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 기술을 보긴 어려울 겁니다.”


검법이란 언제나 비밀스럽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느 도장이든 오가는 자들이 쉽게

엿보지 못하도록 창문을 높게 달고 있다.

이는 비전을 함부로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자못 거창한 비전이라도 되는 양 비밀스럽게

숨기는 것도 일종의 처세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기술을 시시도가 쉽게 보여줄 리 없었다.


“그 시시도라는 분의 도장은 어디요?”


“성밖에 있는 강가에서 수련하고 있어요.”


시시도는 수련하는 날이면 강가의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에 장막을 둘러쳐서 사람들의

시선을 차단하고 그 안에서 무술을 가르쳤다.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을 차단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시선을 끄는 결과를 낳았다.

그 장막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 신비감으로 이어졌고,

그 때문에 평판이 자자했던 것이다.


무사시는 그들이 수련하는 날 직접 강가로

나갔다. 듣던 대로 소나무 숲에 커다란 장막이

둘러쳐져 있고, 장막 밖에는 수백 명의

구경꾼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안을 볼 수 없는데 구경꾼이 몰리다니,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하지만 볼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안에서 흘러나오는 이런저런

소리를 통해 나름대로 상상하며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무사시는 구경꾼 중 한 사내에게 물었다.


“구사리가마가 대체 뭐요?”


사내는 숨을 죽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천축의 마법과 같은 거죠.

칼을 쓰는 검도는 상대가 되질 않아요.“


“쇠사슬로 상대의 칼을 휘감는 거라고

하던데요?“


“아마 칼이 휘감길 정도로 싸울 수 있는

검객도 찾아보기 힘들거요.“


그 사내의 말인즉, 어지간한 검객들은

미처 칼을 쓰기도 전에 시시도가 공중에서

날린 쇠뭉치에 맞아 머리가 깨져버린다는

것이다. 그 쇠뭉치는 엄청난 속도로 돌면서

날아가기 때문에 소총 100정을 동시에 쏘는

것과 같은 위력이 있어서 아무리 이름난

검객이라도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에게 도전한 사람은 있소?”


“이 달 들어 떠돌이 검객 셋이 장막 안으로

들어갔지만, 모두가 처참하게 죽어서 나왔죠.“


그중 한 명은 마치 포격을 당한 사람처럼

얼굴이 절반쯤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어떻게 좀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그건 힘들 거요.”


요컨대 직접 보려면 도전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무사시는 장막 옆의 잔디 위에 앉아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 시간 가량

자리에 앉아 소리를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광경을 재연해보았다.


무사시는 여느 검객과는 달리 새로운 무기에

대한 지식과 상상력이 풍부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짓테라는 무기로 처음

검술을 배웠기 때문에 다른 검객들처럼

새로운 무기를 두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친숙함을 느끼고 있었다.

※ 만화에서도 등장하지만, 이 짓테라는 무기는

무사시의 부친, 신멘 무니사이가 애용하던 장비로

하급무사들이 평화시에 치안유지를 위해 착용하던,

우리가 사극에서 자주 보는 포졸들의 방망이와 같은

용도의 무기로서 후일 에도의 치안을 상징하는

장비처럼 인식되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개를 갸우뚱하던 무사시가 갑자기

장막을 젖히며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시시도가 무술을 연습하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런 거였군......”


그 순간 누군가 안으로 들어온 것을 눈치챈

시시도가 황급히 동작을 멈췄다. 여기저기서

문하생들이 무사시를 책망하고 나섰다.

그러자 무사시는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소.”


무릎을 꿇은 채 말한 것은 시시도에게 자신의

키를 보이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그는 일부러

몸을 한껏 작게 웅크렸다. 시시도의 문하생 중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요? 난 반슈 출신의 로닌이오.”


무사시는 이렇게 말하며 종이에 이름을 써서

문하생에게 건네주었다.


“스승의 이름은?”


“스승은 없소.”


“그럼 어느 유파요?”


“네겐 스승도 없거니와 유파도 없소.

내 검법은 야산에서 스스로 터득한 거요.“


“기다리시오.”


문하생이 종이를 들고 시시도 쪽으로 걸어갔다.


무사시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시시도는

50보쯤 떨어진 곳에서 자리에 앉아 문하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사시는 그 표정이나

입술의 움직임을 통해 그가 자신의 무기에 대해

묻고 있음을 알았다. 문하생이 그에게 곧바로

대답했다.


“칼을 갖고 있습니다.”


이윽고 문하생이 다시 무사시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기다리시오.”


무사시의 도전에 대한 승낙 여부에 관해서는

일체 말이 없다. 무사시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시시도는 상대를

기다리게 하면서 상대의 체형이나 습관적인 동작

등을 살피려는 것 같았다. 그런 의도를 간파한

무사시는 잔디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나자 시시도는 문하생을

통해 말을 전했다.


“우리 유파에는 연습 시합이 없소.”


사실 그런 무기라면 연습 시합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당연히 진검 승부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럼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시오.”


시시도의 뜻을 전한 문하생은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우리 유파에 도전해 무사히 목숨을 보전한 자는

아무도 없소. 무모한 살생은 원치 않는다는 게

우리 스승님의 말씀이오.“


“그렇게 배려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무사시는 짐짓 순진한 척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검술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고 전해 주십시오.“


“잠시 기다리시오.”


문하생은 다시 시시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문득 상대가 꽁무니를 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무사시는 팔을 번쩍 들어올려

빙글빙글 소매를 걷어 매고,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머리띠를 조인 뒤, 시시도가

앉아 있는 쪽을 향해 벌떡 일어났다.

이른바 도전하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이제는 도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리라.


시시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침을 뱉으며

위협적인 말투로 소리쳤다.


“애송이가 죽음을 재촉하는군.”


그는 다시 한 번 침을 뱉더니 곧바로

투구를 썼다. 그들이 사용하는 연습용

호구임이 분명한 그 투구에는 쇠고리를 엮어

만든 갑옷까지 몸에 걸쳤다.


“무사시, 준비 됐느냐?”


“물론이오.”


무사시는 양손을 늘어뜨린 채 순순히

대답했다. 그는 언제나 시합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는 아무런 자세도 취하지 않는다.


무사시가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시시도는 왼손에 들고 있던 낫을 왼쪽

머리 위로 비스듬히 치켜 올렸다.

오른손에는 여섯 자 길이의 쇠사슬이

들려 있다. 두 손 사이의 쇠사슬이 팽팽해지자

늘어뜨린 추가 서서히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저게 바로 구사리가마로군......”


무사시가 이렇게 중얼거린 순간, 붕붕 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추가 날아왔다. 피하면 피하는

쪽으로 날아왔고, 물러서면 길게 뻗어왔다.


추가 휙 날아왔다가 다시 멀어지는 순간,

무사시는 살짝 물러나면서 재빨리 왼손으로

칼을 뽑아들었다. 그는 칼을 왼손으로 쥔

상태에서 칼의 높이를 낮춰 하단 자세를

취했다.


주위에 늘어선 문하생들은 무사시가 칼을

왼손으로 쥔 것만으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리라. 하지만 다음 순간에 돌변한

무사시의 자세는 그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무사시는 오른손을 번쩍 쳐들었다.

그 손에는 어느새 뽑았는지 단도가 들려 있었다.


시시도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무사시로서는 이런 기이한 자세 이외에는

달리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다.

그 역시 일찍이 이런 자세를 취한 적이 없다.

훗날 무사시는 구마모토 부근에서 한 문하생에게

이 자세를 몇 번이나 재연해 보였는데, 이 자세는

생사가 오가는 기로에서 그가 순간적으로 생각해낸

것이었다.


머리 위로 쳐든 단도의 역할은 다양했다.

단도는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시도의

오른손 동작에 맞춰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무사시는 시시도가 오른손으로

쇠사슬을 돌리는 것에 맞춰 자신도 오른손을

돌림으로써 상대와 호흡을 일치시키려는

의도였다.


무사시는 장도로 적의 쇠사슬을 유인하면서

머리 위의 단도를 공격 무기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시시도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껏 그는 언제나 칼을 하나만 들고 있는

검객을 상대해왔다. 칼이 하나라면 쇠사슬로

그 칼을 휘감으면 그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사시의 단도 쪽으로 추를

날리자니 장도를 놓치게 되고, 장도를 노리자니

무사시의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단도가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다.


시시도가 이렇게 머뭇거리며 공격을 늦추는 사이,

무사시가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무사시는 이런

자세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시시도가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공격에만 사용되던 구사리가마가 방어로 돌아서면

그 약점이 노출되게 마련이다. 무사시가 기다린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시시도가 돌리는 쇠사슬의 추가 아주 잠깐 동안

아래로 내려갔다. 무사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단도가 번득이며 순식간에 시시도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갑옷에 부딪쳐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그 순간 시시도가 오른팔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무사시는 상대가 당황하는 틈을 타 장도를 내리쳤다.

하지만 미치지 못했다. 시시도가 황급히 뒤로

물러서면서 자세를 흐트러뜨렸다.


다시금 그에게 달려든 무사시는 두 손으로 장도를

움켜쥐곤 정면에서 내리쳤다. 그 엄청난 힘에 투구를

쓴 시시도의 머리가 두 동강이 났다.


무사시는 곧바로 시시도의 시체를 뛰어넘어

웅성거리는 문하생들 사이로 칼을 휘두르며

돌진했다. 그리고 곧바로 장막을 베어낸 뒤,

바람처럼 그대로 모습을 감춰버렸다.


미야모토 무사시 / 시바 료타로 지음 / 창해출판사 발췌


소설 속의 발췌된 부분이 이 사슬낫의 용도와 위력,

그 한계를 가장 잘 압축한 것 같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자신의 독특한 신체적 조건과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독창적인 기술, 그리고 고유의

정기로 일반 검객들이 상대하기 어려웠던 이 신병기를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도류를 구사하는 그가 아니라 다른 검객이라면

그 실력의 우열을 떠나 사슬낫이 구사하는 독창적인

전법 때문에 그 검술을 채 펼치기가 힘든 조건이었지요.


무사시 역시 이 초창기에는 어릴 적 부친에게서 배운

짓테 사용법을 응용한 임기응변으로 시시도 바이켄과의

결투에서 승리했을 뿐, 이도류를 본격적으로 구사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이러한 대결이 그에게 많은

자극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이도류는 일반인이 구사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인지라 역사와 문학으로는 남아 있지만 이후에 다시

그와 같은 박진감 넘치는(대신에 생사를 걸어야만 하는)

대결은 이뤄지지 않았지요.

이 무기는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그 기술을

익히는데 많은 수련이 필요하고 은밀 행동이나 개인전투에

유용하지만 집단전투에서는 활용하기 애매한 병장인지라

널리 보급되지 못했는데 그 때문에 오히려 신비감은

더욱 높아진 경우라 할 수 있겠지요.

by 붉은10월 | 2009/05/07 21:42 | 뒤죽박죽 밀리잡학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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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초록불 at 2009/05/08 08:45
잘 보았습니다. 재밌네요.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09/05/08 11:06
별 내용없는 짜집기인데 잘 보셨다니 꿈보다 해몽이 좋은듯 ^^a
Commented by JOSH at 2009/05/08 09:29
멋진 소설작가가 되려면
시바료처럼 자료연구도 정말 열심히 하고
문체도 깔끔하면서 묘사도 현실감 있게 해야 하잖아...

그런데 우린 그렇게 못 하잖아.
그렇게 노력도 안하고...

... 우린 아마 안 될거야.


현실에서 먼치킨을 보았을 땐 역시 이런 느낌을...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09/05/08 11:09
시바 료타로 같은 작가 되기는 쉽지 않죠.
문체는 쉽고 간결한데다 고증은 뛰어나고 소재 잡는 것도
탁월한. 그렇지만 그저 달려야할 뿐이지요...
Commented by 로가디아 at 2009/05/08 10:33
인용하신 본문에 보면 포탄에 맞은것처럼 얼굴이 갈라졌다 라는 내용이 있는데
미야모토 무사시가 활약하던 당시에 그정도 위력을 가진 화약무기가 있엇나요?
Commented by JOSH at 2009/05/08 10:57
시대로는 임진왜란 이후입니다.

미야모토 무사시도 토요토미-토쿠카와의 동서전쟁에서
패자 측에 속한 '낭인'이며 젊은이었고,
동서전쟁에서 활약하고 막부의 번주나 가신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중/장년,
당시 장년/노년은 직접 임란에 참전했던 사람들도 있었지요.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09/05/08 11:07
당시에 조총은 폭넓게 보급되어 있었고 조총의 변종인 대형철포 등이 사용되던 시절이랍니다.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09/05/08 11:08
일본의 당시 화약무기에 대해선
들녘출판사 판타지 라이브러리 시리즈 중
"무기와 방어구 - 일본편"을 참조하시면 될 것입니다.
Commented by 애프터스쿨 at 2009/05/08 13:25
잘 봤습니다.ㅎㅎ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09/05/08 13:46
퍽 무안스럽군요. 별것없는 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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