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전] 구로자와의 관제영화, <가장 아름답게>

구로자와의 관제영화, <가장 아름답게>

 



가장 아름답게(1944)

一番美しく The Most Beautiful

 

드라마 | 일본 | 85분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출연 시무라 다카시(이시다 고로),

키요카와 소지(요시카와 소이치)

스가이 이치로(신다 켄)

이리에 타카코(미즈시마 노리코)

야구치 요코 (와타나베 츠루) 외

 



제작노트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던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전쟁 협력의 메시지를 소리 높여 외치기보다는,

나라를 위해 필사적으로 일하는 심지 굳은

여성들의 모습을 응시한 시선이 돋보인다.

 

당초에는 전투 장면을 담은 액션영화로

기획되었으나, 영화 제작을 위해 무기를

빌려올 수 없었던 관계로 군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터치로

그리게 됐다고 한다.

 

미국과 싸우기 위한 병기를 생산하는

공장 장면에서 미국 작곡가 수자의 행진곡을

사용한 데서는 구로사와의 반골 기질이

엿보이기도 한다.

 

구로사와 영화 중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작품이지만, 감독 스스로 자신의

“제일 귀여운 영화”라고 말했으며,

여성영화의 명수 기노시타 게이스케 감독이

구로사와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주연을 맡았던 야구치 요코는 이듬 해

구로사와 감독의 아내가 되었다.

 

(한국영상자료원 -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카탈로그 중 발췌)



 

거장의 전쟁협조 관제부역영화



 

대략 줄거리는 이렇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



 

정상적인 학교 교육은 이미 중단되었고

학생들은 미군의 공습을 피해 시골로

피신하거나 군수공장 등에서 일하면서

보내는 하루하루의 연속.



 

미국의 무지막지한 물량공세에 대일본제국은

늘 전가의 보도처럼 뇌까리던 “정신력” 운운하며

각지의 공장에서 물적 토대가 안 되는 걸 노력

동원으로 극복하겠다는 증산운동 3개월 작전에

돌입한다.



 

이 영화의 무대인 동아과학회사는 정밀광학장비를

생산하는 곳으로 남자공원들에게는 3개월 내 기간

100% 증산을, 여학생들에게는 50%의 증산을 강요한다.



 

남자의 반이라는 목표에 자존심이 상한 여학생들은

스스로 목표치를 3분의 2로 높인다.



 

조장 와타나베 쓰루를 중심으로 여학생들은

생산 증가를 위해 온 힘을 모아 노력하지만

얼마 안 가 피로가 누적되며 오해와 반목으로

무리가 생기기 시작한다.



 

가족의 병환, 신체 허약자의 과로, 불의의 사고

등이 벌어지고 이 와중에 벌어지는 내부 갈등과

개인의 고뇌가 이어진다.



 

그러나 모든 갈등은 하나 둘 봉합되고 급기야

병마로 어머니를 잃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증산을 위해 달리는 조장 와타나베 양을 필두로

공장 관리자들의 격려 아래 여학생들은 기계처럼

일한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각국은 경쟁적으로

국가 총력전에 동원되어 시달리던 국민들을

위문하고 전쟁수행의지를 고취하기 위해

영화라는 20세기의 대중예술을 철저하게

착취한다.



 

구로자와 아키라에게 이 영화의 제작은

1943년에 입봉한 신예 감독으로서 전쟁 기간

영화 작업을 계속할 수 있고, 정부와 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도였을 것이다.



 

그는 그리 큰 고민 없이 상대적으로 무난한

전시홍보영화를 선택했고, 실제 전쟁장면이나

적들(흔히 전쟁 당시 “귀축영미”라 불렸던 이들)에

대한 격렬한 증오심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이

작품을 제작한다.



 

그러나 어쨌든 부역은 부역이고 전쟁협조는

전쟁협조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촬영한

구로자와에게 소극적 전범의 혐의를 낙인으로

찍는다해도 그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참화 앞에서 영화를 찍고 싶었던

신예 감독은 악마의 유혹 앞에 거리낌없이

창작활동을 선택했고 그 결과 주홍글씨는 당연하게

그가 짊어져야 할 업보이다.



 

각설하고... 부역혐의는 이 정도로 인정하고

넘어가버리고자 한다.



 

평이한 연출, 계몽적인 구성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평면적인 인물들의

구태의연한 혼란과 극복을 다루고 있다.



 

그냥 일반적인 계몽 드라마와 별반 차이나지

않는다. 적당한 갈등과 봉합. 그리고 가족보다

국익을 앞세우는 자연스런 정서. 그러나 그리

폭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려는 친근한

시도들이 쉼없이 이어진다.



 

군데군데 웃음을 자아내는 코드와

신파적 감성을 자극하는 촉매들이 흩어져

있다. 그러나 파편적이다.



 

조금 더 앞 시기에 나치 독일을 상징하는

레니 리펜슈탈의 역사적인, 저주받은 걸작

다큐멘터리들에 비한다면 구로자와의 이

작품은 그냥 평작이다.



 

<가장 아름답게>가 기억되어야 할 이유는?



 

나중에 일본영화의 천황이 된 세계적 거장의

영화사적 연대기의 잊혀진 초기 필모그래피에

언급될 때에만 의미가 있는 그런 작품.

 



아니다.

 



구로자와는 이 영화의 주연으로 와타나베

조장 역을 맡은 여배우에게 다음해 청혼해

결혼에 골인하고 평생을 함께 살았다.



 

1945년, 패색이 짙어지던 시기 여전히

국제정세 판단도 제대로 못 하던 일본군부가

“일억총옥쇄론”과 “본토결전” 운운하며 동네

노인과 여학생들에게까지 죽창을 쥐어주고

‘원쑤 미제놈의 배때지에 원한의 죽창을 찔러넣자!’

어쩌구 하던 시절에 구로자와는 영화 촬영 당시

눈독들여놨던 여배우에게 ‘일억옥쇄하게 되면

다 죽을 판인데 우리도 결혼생활이라는 것을

한번 경험해보고 싶소...‘라는 멘트로 프로포즈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 구애를 받아들이고 금새 결혼에

골인한다.



 

그리고 1951년 어느 날, 거듭된 영화의 흥행

부진으로 시골에 칩거해 낙싯대 들이대고 있던

구로자와 아키라에게 전작 <라쇼몽>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헐레벌떡 뛰어와 전하는 중책을 담당한다.



 

그 이후 구로자와 아키라의 행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거장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시대와의 불화 혹은 순응. 그리고 평범한

국가의 나팔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by 붉은10월 | 2010/08/23 14:15 | 시네마테크부산&PIFF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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