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s PIFF] 첫 번째 묘비석, 쌉싸름한 시골 공동체 풍자극





이란은 중동의 영화강국이다.



최근 꾸준히 자국 체제를 비판해 온

바흐만 고바디 감독에 대한 탄압으로 인해

세계 영화계의 지탄을 받고 있긴 한데

이란 영화의 원동력은 역시나 국가 지원에

힘입은지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같은

현재 이란 영화계의 큰 어른들이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하지 않는다고 꽤나 욕을

먹고 있기도 하는 중.



* 정작 키아로스타미는 이란을 떠나

외국자본으로 영화 찍는 데 점점 맛을

들이는 중인지라 젊고 저항적인 이란

영화 소장파들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간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더라는...



이란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던 나름대로 먹고 살만한 농부

핫산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인 지 오래다.



핫산은 자신이 죽게 되면 묘에 놓여질

묘비석을 생전에 미리 만들어야한다는

강박에 쫓긴 나머지 한해 포도농사를

전부 투자해 묘비석을 만들어 온다.



* 이 과정에서 이란 시골의 가부장제

분위기가 드러난다. 뭐 우리네 부모님

대에 여자는 소나 키우고 벙어리로 살아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뭐라 하기도 그렇지만.



부인 지바르는 무심한 남편 핫산에게 원망을

퍼붓고 둘은 옥신각신 다투던 끝에 지바르의

묘비석도 만들어주겠다는 핫산의 마지못한

한마디에 반색을 한 지바르는 이제 남편의

선견지명을 동네에 퍼뜨리고 다닌다.




핫산의 아들도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돈을

받고 묘비석 관람을 주선하는 등 마을은

서서히 묘비석이 트렌드가 되어간다.




마을의 아낙네들은 지바르의 염장에 다들

밤마다 남편들을 들볶기 시작하고 억눌려

있던 시골 여인들의 경쟁심은 그녀들의 남편들을

진저리나게 만든다.






졸지에 핫산은 여성들의 우상이 되고

마을의 유력한 지주들은 이 경쟁에 뛰어들어

가문의 영광(?!)을 찾는다.




그러나 여인네들의 극성에 시달리고

졸지에 출혈지출을 해야할 지경에 놓은

동네 가장들은 핫산을 원망하고 급기야

핫산에 대한 테러까지 발생한다.




핫산은 그와 시비가 붙은 이웃에 대한

폭행혐의로 경찰서에 잡혀가는 신세가 되고

묘비석도 파손된다.



그는 꿈속에서 노년이 된 자신이 되어

마을 공동묘지를 찾는다.



그와 티격태격하던 수많은 이웃들이

죽어 묻혀 있고 그가 선도한 유행에 의해

즐비하게 놓인 묘비석의 글자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다 아내 지바르의 묘비석에 이르게 된다.




그는 잠에서 깨어나고 말 그대로

“앗! 꿈이었구나.”(좀 더 적나라한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그 짤방 쓰기엔

무리수가 많은지라 과감히 생략)와 함께

이 헤프닝은 스리슬쩍 잊혀져갈 운명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코미디와 블랙코미디를

오간다. 그리 심각하게 가지는 않지만

‘마을’이라는, 아직 이란이라는 동네에선

가장 일반적이고 중요한 삶의 단위 공동체의

다양한 이면을 보여주는데에는 성공한 시도인

듯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 큰 욕심 내지 않고 공동체 내의 촌극이

어떻게 전파되고 사그라져드는지에 대한

풍자로, 혹은 부부싸움이 어떻게 커지는가에

대한 사회적 우화로서는 성공적인 작품이다.




아울러 이란 시골마을의 풍광, 그리고 그

동네 먹고 사는 풍경에 대한 박물학적 자료로서도

워낙 이 동네 접하기 힘든 동방의 소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선 반가운 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DVD 박스셋은 여전히

비싸고 할인도 해주지 않는데다 중고도 잘

안 풀리는터라 그저 아쉬울 뿐이다.



역시 아래는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영화 소개를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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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힘 포르제쉬 감독의 삶과 죽음의

의식에 관한 블랙 코미디.



매일 밤마다 죽는 꿈을 꾸던 핫산은

도시로 나가 자신의 묘비석을 만들어 온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핫산을 조롱하고,

아내 지바르도 핫산을 비난하지만 점차

묘비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지바르는 자신의 것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핫산은 이에 응한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을의 여인네들도 남편에게 똑 같은 요구를

하기 시작하고, 마을 남정네들은 이 모든 것이

핫산 때문이라며 격렬하게 항의한다.



그리고 비록 꿈속이기는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많은 마을 사람들이 묘지에 묻히고 그들의 묘지는

묘비석으로 덮인다.



묘비석은 이란의 전통적인 문화의 한 단면이다.



핫산과 지바르가 묘비석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바로 묘비석에 새기는 문구이다.



한 편의 시와도 같은 묘비석 문구는 이란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의식을 드러낸다.



또한, 핫산이 지바르의 묘비에 새겨주는 문구는

사랑의 시에 다름 아니다.



핫산의 묘비석이 비록 한바탕 소동으로 끝나기는

하지만, 감독은 그 소동을 통해 이란의 공동체

사회의 도덕과 관습, 여성과 남성의

의식의 차이 등을 이야기한다.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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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소개>



첫 번째 묘비석 / The First Stone

Iran / 2010년 / 82min / 35mm color



에브라힘 포르제쉬 / Ebrahim FOURJESH



테헤란 출신의 각본가, 감독 겸 제작자.

로카르노국제영화제,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상파울루국제영화제 등지에서 찬사를 받았다.



연출작으로는 <사랑할 시간>(2008),

<하문과 다리야>(2008), <석유의 자손들>(2001),

<작은 남자>(2000), <항아리>(1992),

<열쇠>(1987) 등이 있다.

by 붉은10월 | 2011/02/05 00:26 | 시네마테크부산&PIFF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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