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s PIFF] 바람과 모래 속으로 사라져간 사람들의 연대기

현대중국의 명암이 시작된 1950년대




중국현대사, 공산화된 중국에 대해

긍정적인 기억을 가진 이들은 흔히

1949년에서 그 기억을 멈춘다.





그리고 공산중국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 사람 목숨 갖고 장난치는

얼치기 홍위병 장난질로 치부하는

사람이라면 50년대 이후 30여 년

간의 뻘짓(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 시기)

의 갖은 헤프닝을 갖고 중국의 사회주의란

것이 ‘마오의 사생활’ 광풍이나 결국

‘새로운 황제’를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논거로 50년대부터 쭉 사례들을 나열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 인식 속에 중국현대사는

크게 단절되어 존재하고 있으며 그

기점은 1950년대이다.




1950년대의 시작은 중국의 공식 입장으론

<항미원조전쟁>, 즉 한국전쟁 참전으로

시작된다.



마오 주석의 아들 모안민도 사단장으로

참전해 미군의 공습으로 전사할 만큼

갓 수립된 신생정권으로선 과도할 정도로

열심히 ‘사회주의 조국’ 북한을 지원했던

이 전쟁은 2차 대전 때 공산군에 대해

일정부분 원조국이기도 했던 미국이 중국

내에서 제국주의 수괴가 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그리고 중국 사회 내에선 反 우파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왕 빙 감독의 <바람과 모래>는 정확히

이 시기에 우파로 몰린 이들이 겪었던

‘수용소군도’ 이야기다.





중국 오지에 버려진 지식인들의 생지옥 수난사




왕 빙 감독에게는 이 영화 <바람과 모래>가

첫 극영화에 해당된다.



하지만 역시 다큐멘터리로 유명해진 감독답게

극영화라 해도 거의 다큐 기법으로 촬영했고

구성 역시 기승전결의 클라이맥스보다는 담담히

극 중 인물들의 처절한 수난을 잡아내는지라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한 착각에 순간순간

빠져들곤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여러 출신성분으로 나뉘지만 결국 공통분모로는

서북 오지로 끌려오기 이전 대부분 사회지도층

인사들, 당 간부이거나 교사, 학자, 교수 등

소위 화이트칼라에 속하던 이들은 사막에서 농장

개척에 투입되어 이른바 ‘하방’에 나서게 된다.





손에 익지 않은 힘든 노동은 약과다.



이들이 거주하는 곳은 그들 자신이 빈약한

도구로 파들어 간 토굴이며 전기도 수도도 화장실도

그들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토굴 속에서 빈약한 땔감으로 추위를 견디고

멀건 죽으로 하루하루 끼니를 연명하면서

제대로 된 의료와 후생이 전무한 가운데 그들은

무더기로 죽어나간다.





살아남기 위해 잡초를 뜯거나 쥐나 벌레를 잡는데

혈안이 된 이들의 모습을 보면 과거 홀로코스트

문학에 등장하던 강제수용소나 근래 뉴라이트 계열

단체에서 경쟁적으로 내는 북한의 참상이 그대로

재현되곤 한다.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펼쳐진 중국 사막의 황량한

풍경과 사실적인 배우들의 연기는 당시의 지옥도를

그대로 우리 앞에 재현해낸다.



사막의 모래바람은 그들의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각자가 홀로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물건을 훔치고, 심지어 죽은 이들의

보잘것없는 매장지를 파헤쳐 옷가지를 벗겨 감은

물론 인육을 섭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도

간간히 펼쳐진다.



노역에 종사하는 남편은 너무 힘든 나머지

도회지의 부인에게 식량과 생필품 좀 보내달라고

눈물의 편지를 쓰지만 쇠약해진 그는 부인이

찾아오기 전에 병사하고 만다.





그가 임종할 때 매장을 부탁한 옆 동료는

차마 찾아온 부인에게 그의 시신이 파헤쳐 졌고

옷은 다 도둑맞은 데다 엉덩이 살이 베어져나갔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어 그의 묘 자리를 숨기려 애쓴다.



사막을 방황하던 부인이 만신창이가 된 남편의

유해를 발견하고 구슬피 울부짖는 모습은 시공간을

넘는 한의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저 참상에 대해 연민하고 동정하지 않을 인간이

과연 인두껍을 썼다고 해서 사람일 수 있을까

싶은 지경이다.



너무나 심한 인명피해에 결국 중국정부는

사막농장에 식량을 공급할 수 없어 이들을

일시적으로 고향으로 돌려보낸다.



그러나 농장장은 자신의 한때 동료였던

이를 불러 국수 한 그릇을 함께 먹으면서

그에게 가지 말고 농장에 남으라고 권한다.



어차피 우파로 찍힌 이들의 낙인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니 자기 옆에서 보살핌을 받는 게

나을 것이라며.



※ 극중 내내 쥐부터 잡초까지 악식의 향연(?!)이

펼쳐지던 와중에 모락모락 김을 내며 구수하게

등장한 국수 한 그릇은 정말 세상에 다시없는

진미로 여겨지게 된다. 침이 꿀덕꿀덕 절로

넘어가더라는...



영화는 그 현장에 있었음직한 구슬픈 중년

남성의 목소리로 읊조리는 비가와 함께 막을

내린다. 엔딩. 먹먹해진다.



처음으로 본 왕 빙의 영화세계




왕 빙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가 2000년대 들어

수작으로 지목한 4편 중 그의 (현재까지의)

대표작인 <철서구>가 거론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2009년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이기도

한 이 9시간이 넘는 대하(?!) 다큐멘터리를

불행히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감독 자신이 곧 문을 닫을 쇠락한 산업도시

선양(셴양)에서 6mm DV 카메라 하나 들고

2년간 홀로 찍은 '원맨밴드' 다큐멘터리,

상영시간 551분을 보는 이가 견뎌야 한다는

“전설”같은 소문만 바람결에 들려올뿐인

이 작품을 과연 언제 나는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작품, <바람과 모래>를 통해

대략 <철서구>가 어떤 작품일 것이라는

“감”만은 전해져왔다.




그리고 <철서구>를 통해 쇠락해간 중국

현대사의 풍경을 보게 될 날을 여전히

기다릴 것이다. <바람과 모래>는 그

예고편으로 현재는 작동한다.




왕 빙의 새 작품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게 될까. 다큐멘터리에서 극영화로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은

다큐멘터리의 자장 안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게 뭐가 나쁘지.

물론 새로운 것을 보여주면 더 좋겠지만.



<작품정보>



바람과 모래 The Ditch



China, France, Belgium / 2010년 / 108min

감독 왕 빙 / 2010년 베니스영화제 경쟁



1950년대 말, 우익인사로 몰린 사람들이

고비사막 한가운데 있는 강제노동수용소로

내몰린다.



가혹한 노동과 견딜 수 없는 날씨,

끔찍한 식량부족으로 인해 매일 밤 사람들은

모래 구덩이 속으로 사라져 간다.



<바람과 모래>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명성을 쌓은 왕빙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이다.



그는 극한의 상황에 몰린 사람들의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냉정하게 관찰한다.



황량하고 메마른 넓은 사막 밑에 자리 잡은

모래 구덩이들은 사람들의 집이며 무덤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삶의 온기를 찾지만 동시에

죽음을 맞이한다.



이 메마른 사막에서 정치적 신념은 가치를 잃는다.



국수 한 그릇이 가져오는 생명력을 온 몸으로

반응하며 이들은 모두 생존을 위해 허우적댄다.

왕 빙은 모든 인간성이 포기된 지점, 드라마를

삽입한다.





남편의 죽음을 마주한 아내의 울부짖음은

숨 막힐듯하게 황폐한 공간에 인간적인

감정의 힘을 불어넣는다.



(부산국제영화제 조영정 프로그래머)



감독소개



왕빙 / WANG Bing



1967년 중국 산시성 출생.

1992년 루쉰예술학교에서 사진을,

1995년 베이징 영화 학교에서 촬영을

공부하였다.

1999년부터 독립영화 작업을 시작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선로의 서쪽, 철서구> (2003),

<중국여인의 연대기> (2007) 그리고

<이름 없는 남자> (2009)가 있다.

by 붉은10월 | 2011/02/07 00:15 | 시네마테크부산&PIFF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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