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FF] 멕시코 빈민들의 잔혹동화- 우린 우리다 Somos lo que hay We Are What We Are



멕시코 도시빈민들에 대한 끔찍하고도 서글픈 동화.

카니발리즘이 그 재료이다.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도 갖지 못한 한 도시빈민 가족은

식인을 한다.


가장은 대대로 가족부양을 위해 식량(사람)을 구해올

책임과 권한을 가진다.


영화 초반에 비틀거리며 도시를 배회하다 쓰러져 죽은

초로의 남자가 바로 그 가장이다.


<렛미인>의 EX-BOYFRIEND처럼 아버지는 이제

과거의 가장으로서의 기력은 온데간데 없는 늙고 쇠약한

모습으로 번화가를 비틀거리다 피를 토하고 죽는다.



그런 그의 죽음은 그저 노숙자들의 비명횡사처럼 취급되고

금새 번화가 상가 앞 죽음의 흔적은 청소되어버린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아버지를 잃은 공동체 - 히스테리를 부리는 어머니,

유약해보이는 장남과 충동적이고 사고만 치는 차남,

어른스러운 누이 4명이 남는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존재들처럼 인육을 먹지 못한다 해서

괴물로 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뭔가에 쫓기듯 인육을 구해 제의를

치러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다.





두 형제는 거리의 아이들을 잡아오려 하지만 실패하고

급기야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창녀를 우여곡절 끝에

잡아오지만 창녀를 지독히도 증오하는 어머니에 의해

제지당하고 애꿏은 창녀만 어머니에게 맞아죽고 만다.


어머니는 남편의 죽음 원인이 창녀들에게 있다며

죽은 창녀의 썩어가는 시신을 창녀들이 영업하는

거리에 여봐란 듯이 집어던진다.


창녀들은 이런 거리의 사건들에 관심도 없는 경찰들에게

뇌물과 향응을 약속하고 사적인 복수를 의뢰한다.



이런 상황도 모른 채 계속 불안에 찌들어가는 이들

가족은 사냥을 시도한다.


장남은 동성애자를 유혹해 집으로 데려오지만

산제물(?!)은 가족들 간의 소란 끝에 도망치게 되고

경찰에게 그들의 위치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다른 제물을 구해 나름대로의 의식을 진행하려는

(사실상 도살장에 불과한데 의식이래봐야 초 몇십개

켜놓고 태엽시계 쨍강거리는 것에 불과하지만)

찰나에 경찰이 들이닥치고 마침내 가족은 파국을 맞는다.



갑자기 장남은 여동생에게 달려들어 그녀를 물어뜯고

차남은 그런 형을 권총으로 사살한다.






차남 역시 경찰에게 난사당해 죽는다.


어머니는 공동체의 제의를 유지하기 위한 일념으로

자식들을 버리고 탈주하지만 창녀들은 그녀의 뒤를

밟아 린치를 가한다.



오빠에게 공격받는 바람에 인질로 오인된 여동생만

살아남아 병원에서 요양하고 있다.




콘크리트 정글 속의 식인종들,

인육섭생으로 연명하는 멕시코 도시빈민잔혹사




영화 중간에 부패경찰들은 차 안에서 중얼거린다.



‘이 도시 안에서 식인이 얼마나 광범위한 풍습인데...’

길거리 시장에서 싸구려 행상으로 연명하지만 자릿세도

못내 쫓겨나기 일쑤인 이 빈민들이 언제부터 인육이라도

먹으면서 생존해나가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사실 도시빈민들이 그들만의 게토에서 근친상간과

대를 이은 범죄행각, 그리고 수상쩍인 의식들로 명맥을

잇는 것은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인구밀집이 심한

3세계권에서 드물지 않은 일이다 -


극중에서는 인육섭생을 하게 된 도시빈민들이

식인을 한다는 죄의식을 떨쳐내기 위해 제의를 도입한

것처럼 묘사되는데 이들이 인육을 먹는 장면이나

일상에서 크게 강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멕시코의 고대사, 아즈텍 문명의 인육섭생이

제의적 성격을 갖고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부족한 단백질

섭취의 한 방편이기도 했다는 역사적 맥락과 연결하는 게

더 인과관계가 들어맞는 듯.


특별한 능력이 없는 도시의 아웃사이더들이다 보니

사람 사냥에 곧잘 실패하기도 하고 사회적 약자들만

골라 사냥을 시도하는 장면에선 결국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등쳐먹고 살아야하는 비열한 거리의 풍경이

드러나게 마련이라 씁슬해질 수 밖 에 없다.





장남이 버스에서 만나는 기이한 여인이 준 쪽지,

“너는 살아 있다”는 막판 경찰에 포위된 상황에서

돌연 여동생을 습격하는 장남에 의해 여동생 손에

쥐어지게 되고 기묘한 연결구조를 통해 그 문장은

현실이 되고야 만다.



여동생은 홀로 살아남아 다시 그녀를 중심으로 한

모계 공동체를 만들고 피의 제의를 계속할 것이란

암시와 함께 극은 막을 내린다.




걸작은 아니지만 묵직함은 있다



2010년 이후 등장한 신예 호러 중에서 꽤나 호평을

받은 이 작품은 사실 호러나 고어 장면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사회적 은유를 식인 공동체의 명멸을 통해

드러내는 은근한 분위기와 사회고발 성격이 더 강한

그런 작품이다.


일종의 도시괴담이기도 하지만 멕시코의 살풍경한

도시 환경을 환기시켜주는 계몽학습 효과도 있으려나...



1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역시 상영된

<엘 시카리오 : 164호>가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마약과 폭력에 노출된 멕시코의 황량함과 공포를

표현했다면 이 작품 <우린 우리다>는 호러 장르로

그러한 질감을 제공했다는.



결국 멕시코의 리얼리티가 그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저주받은 연옥에 다름아닐지라도 영화 만들기에는 참

이것저것 다양한 토양을 제공한다는 역설로 기억에

남는 그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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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우리다 (2010)

Somos lo que hay We Are What We Are



드라마, 공포 | 멕시코 | 90분

감독 호르헤 미첼 그라우

출연 프란시스코 바레이로(알프레도), 알란 차베즈,

폴리나 게이탠 (사비나), 카르멘 비아토(패트리샤),

조지 제레이트 (오웬)


줄거리


한 가정의 아버지가 죽고 나자 남은 미망인과

십대의 세 자녀는 가족의 전통을 계승하며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한 피의 사냥을 시작한다.



멕시코 한 가족에게 닥친 저주 같은 '카니발리즘'에 대한

처절한 생존 보고서.


평범한 악의 섬뜩함이 관객을 괴롭힐 것이다.

(2011년 12회 전주국제영화제)

by 붉은10월 | 2011/05/26 01:40 | 2011 JIFF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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