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카트>, 상업영화가 비정규직문제를 담는 방식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부지영 감독의 <카트>를
개봉하기 전에 보게 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가면 아무래도 부산에서 보지 않으면
보기 힘든 작품들이나 기획전을 우선시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다른 경로로 볼 확률이 높은 한국영화들은
후순위로 밀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중 찾아보려
했던 작품이 2편 있었으니, 1편은 바로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다이빙벨>, 그리고 다른 1편이 바로 이 작품 <카트>다.

<카트>를 보기로 마음 먹고 2차례의 상영회차 중
고르던 중, 하루 먼저 있었던 야외상영은 영화 관람에
썩 좋지 않은 환경(10월의 야간상영은 꽤나 써늘하다)과,
출연배우 중 한 명인 EXO의 "디오" 도경수 군 무대인사로
인한 아이돌 팬들의 폭주가 두려워 포기하고 그 다음날
잡힌 하늘연극장의 GV가 상영 후 잡힌 회차로 관람했다.



부지영 감독의 작품을 많이 보진 못했다.

역시 부산에서 소개되었던, 공효진과 신민아라는
당대의 셀러브리티 여배우들이 더블 주연이지만
영화 자체는 소품이었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와,
전주국제영화제 숏!숏!숏! 중편 프로젝트 <애정만세>,
<나나나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 정도...

작은 영화에선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을 선보였던
감독이지만 과연 본격 상업영화에서, 그리고 한번도
다뤄보지 않았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비정규노동자
문제를 과연 어떻게 다뤘을까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근래 만들어진 사회 이슈를 소재로 한 상업영화들을
그리 탐탁치 않게 봐왔었기 때문에 제발 이 작품만은 좀
잘 뽑아져나와서 상업영화가 소재를 소모적으로 낭비하지
않는 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다.

* 결국 <다이빙벨>은 티켓팅하기 5분 전에 다른 작품으로
바꿔치기해버렸다. 영화를 좀 편하게 보고 싶은데 이건
뭐 영화 보고 안 보고가 전투가 되어버려서 극장에서 봐도
보는 게 아닐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카트>를 보았다.

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은 800석이 넘는 대형 상영관이다.
아마 실내 상영관 중 최대규모급일 것이다.

제대로 극장 같은 환경에서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다들 익히 알고 있을테니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카트>는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노동자들의 싸움을
담은 작품이다. 마트 캐셔들이 의자에 앉지도 못한 채
'고객님 사랑합니다 ~ ' 를 하루 온종일 읊으면서
계산한 죄 밖에 없는데 경영효율화라는 명목하에
용역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정규직 노동자 일부가 가세하고, 민주노총과 시민단체가
연대해 비정규 여성노동자 문제의 사회적 상징으로
한때(나마) 부각되었던 바로 그 사건이다.

무척 많은 인물들이 등장했고, 전반부는 지나치게
도식적이었다. 순박하게 열심히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있고, 불합리한 대우가 존재한다.

어느 날, 계약직 여성노동자들을 용역직으로 일방적으로
돌리려는 회사의 지침이 떨어지고, 그녀들은 노동조합이란
동아줄을 잡아보려 한다.

노조를 만들고 단체행동을 시작하고, 이를 막으려는
관리자들과 툭탁툭탁 대립이 진행된다.

이 과정은 상당한 조사와 자문을 받았는지 과정을
나름대로 잘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러닝타임과 전개과정에
제약이 있는 만큼 속도감을 내기 위해 축약이 심하다.

그리고 단점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게, 처음부터 우리 편
남의 편은 정형화되어 있고 몇 몇 인물을 제외하면 개성이
부여되지 않는 전형적인 캐릭터로 그친다.
(하지만 수많은 캐릭터들에게 일일히 개성을 부여하다보면
한국판 <전쟁과 평화>가 되어버릴테니 감독의 심정은 족히
이해가 갈 수 밖에...)

감독은 전반부의 속도감을 통해 벌어들인 여유자원을
딱 두 군데에 몰빵하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부지영 감독이 집중한 부분은,
염정아 씨의 가족(도경수 군이 아들로 나온다) 갈등과 화해,
그리고 후반에 힘이 빠지고 분열되었던 노조원들이 최후의
싸움에서 다시 하나되는 극적인 장면 두 부분이다.

염정아 씨는 억척스럽게 일만 하다 얼떨결에 별로
내키지 않던 노조 대표가 되어버렸고 하지만 참 열심히
한다. 그녀의 캐릭터는 배운 것 없고 순박하지만 우직하고
사람 좋아서 오래오래 남는 노조원의 전형이다.

만약 그녀의 캐릭터가 그런 식으로만 정의되었다면
그저 그런 전형적인 조연 이상 부각되기 어려웠을게다.

* 준주연급 캐릭터들 상당수는 그냥 초반부에 부여된
캐릭터가 별반 변화없이 그대로 끝까지 간다.
천우희 씨나 김영애 씨 캐릭터는 그래서 많이 아쉽다.
특별출연 딱지를 달았지만 오히려 김강우 씨 캐릭터가
꽤 개성이 있었는데 주연들을 살리기 위해 후반부에
실종되어버려 못내 아쉽기도...

하지만 부지영 감독은 모자가 모두 비정규직 노동에서
불합리를 겪고 이를 서로 이해하면서 갈등이 치유되는
극중극을 거대한 싸움 속에 아로새기는 장치를 통해
가족 화해와 주인공의 성장을 함께 담아내는 방식으로
중반부의 늘어짐을 돌파하며 클라이막스로 밀고 나간다.



이는 반대로 초반부에 노조 조직에 헌신하지만 다소
밥맛없는 캐릭터였던 문정희 씨의 좌절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물론 이 부분이 노조 투쟁의 전형적인 대비
- 초반 주도형의 먹물과 중후반 주도형의 현장 노동자 -
를 강조한 건 아니라고 본다. 그저 인물 대비를 통한
반전 포인트 정도...)

후반부에서 관객은 몇 번의 감정적 클라이막스를
경험하게 되는데 특히 도경수 군이 분한 편의점 알바생이
겪는 무자비한 폭력과 불합리한 대우의 시각화는 상당한
공분과 현실감을 선사한다.



이 부분에서 부지영 감독은 당대의 핫한 아이돌 그룹
멤버를 또래 세대가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방식으로
시각적 폭력에 노출시킨다. 상당히 노리고 찍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집안은 안 돌보고 데모질한다고
갈라져 있던 가족은 "투사"로 변모해 자식을 변호하는
어머니를 본 아들을 통해 다시 합쳐진다.

비정규직 어머니와 알바 아들의 화해는 현실과
오버랩되면서 노조 투쟁이라는 주제에 심리적 장벽을
애써 만들려던 관객을 무장해제시키는데 상당한 효과로
작용한다.

반면에 현실적인 생활고와 시련으로 상당수의 노조원이
떨어져나가고 회사의 압박에 장기전으로 밀려나면서
점차 잊혀져가는 싸움이 되는 것을 막아보고자 최후의
반격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헤어졌던 이들은 다시
만난다. 그 매개체는 영화제목으로 형상화된 바로 그것이다.



부지영 감독은 명백히 마지막 장면에서
과거 정규직 노동운동(아니 그때는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이
별 의미가 없던 시절이긴 하다)을 상징하는 한국독립영화의
기념비, "파업전야"의 마지막 부분을 재현한다.

2000년대의 방식으로.

남성 - 금속 정규직 - 스패너
여성 - 서비스 비정규직 - 카트

로 대비되지만 계승되는 '뭔가'가 있다.

감독은 오직 이 장면 하나 뽑아내기 위해
버릴 것 버리고 포기할 것 포기하면서
매달리지 않았을까 하는 공상을 해 본다.

뻔히 짐작이 되는 장면이라 할지라도
스크린에서 보게 될 마지막 장면은
결코 식상하지 않을 것이다.



2014년의 "파업전야"라고 선언하는
영화로 "카트"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를 제작한 곳은 명필름이다.

사회적 이슈에 편승해 그 이슈를 소모해버린
근래의 몇몇 시도와 <카트>는 분명히 다르다.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역사의식과 사회에 대한
역할을 담아내는데 <카트>는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전환점이 될 만한 작품이다.

by 붉은10월 | 2014/10/20 22:59 | 2014 BIFF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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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bender at 2014/10/21 11:51
보고 싶습니다 정말 보고 싶은데 보고 나서 가슴이 너무 답답해질까봐 걱정이네요ㅠ

이런 사회고발 영화가 거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일이 없어서 정말 아쉽습니다, 하지만 그게 목적이기도 하니;;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14/10/21 12:22
언급하신 부분에 대해 현 시점에서 가장 절묘한 결말 엔딩을
보여주는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우리는 저 실제 사건의 결말을
알고 있거나 능히 짐작하고 있죠. 하지만 극화로 스크린에서
굳이 또 그걸 보고 싶진 않기도 하고... 그렇지만 억지춘향격
해피엔딩도 바라지 않죠. 그 지점을 이 영화의 결말은
현명하게 잘 풀어나갑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특이하게도
하나의 완결된 세계관을 표출한 <파업전야>와 전혀 그렇지
않은, 다만 온정적인 시선만을 남긴 <카트>가 만나게 되는데
참 기이하면서도 감독과 제작자의 소신이 느껴지는 부분이라
호평한 거죠.

보셔도 크게 답답하진 않으실 겁니다.
Commented by 으흡 at 2014/10/26 03:15
글 잘 읽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인상 깊게 봤는데 이렇게 찾아다니다가 보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14/10/26 16:25
11월6일 개봉인데 좀 많이들 보시면 좋겠네요 ^^
Commented by 닥터제이 at 2014/11/16 21:57
전태일열사님의 기일로 개봉일이 변경되었고, 마침 수능이 겹쳐서 많은 예비사회인들&예비대학생들이 보았고, 또 볼 예정입니다. 장산곶매에서 아무리 잘 뽑아내도 독립영화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메이져인 명필름에 유명아이돌&배우들의 참여로 노동문제가 환기되는 것 같아 반갑습니다.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14/11/17 09:16
올려놓고 수정을 안했는데 언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데는 13일 개봉이라고 여기저기 소개를 하면서도
맨처음 쓴 글에는 손을 안 봤었네요 ^^:::

다행히도 적지않게 들어주시는 것 같아 한숨 돌리는
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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