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마지막 응원, 청춘의 가늘고 시린 순간...
2014년 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른 영화 보기가 애매한 시간대에
날리는 셈 치고 큰 기대 없이 봤던 영화.

그리고 흐뭇함을 간직한 채 극장을 나서게
만든 작품이다.

산노 고등학교 축구부는 어중간한 성적을
내는 팀이다. 엄격하게 팀을 이끌면서
성적을 못 내는 스트레스를 어깨에 짊어지고
코치에게 대표로 혼이 나곤 하는 주장 "고"와
축구부원들, 그리고 "슬램덩크"에서처럼
특별한 혜택 없이 그저 축구부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매니저 "나츠"가 있다.

산노 축구부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중요한
시합에서 힘도 못 써보고 무너져내린다.

3학년들은 이제 진로 걱정을 해야할 시기다.

매니저 나츠는 자연스레 진학 준비를 위해
그만두겠지 하는 주변의 시선을 무시한 채
겨울까지 계속 매니저 직을 수행하겠다고 밝힌다.

그러나 주변에선 당연히 아무 대가도 없는
매니저를 계속할리가 없는데 오기를 부린다고
나츠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고 주장은 실의에 빠진 팀을 일으키기 위해
애를 쓰지만 동기인 미드필더는 축구부를
그만두겠다고 하고, 후배들은 의욕이 없거나
대충대충 시간을 보내려 한다.

나츠와 고는 서로 툭탁거리며 상처를 주고받으며
아파하고 괴로워한다.

선배로서 둘은 1학년을 습관적으로 괴롭히는
2학년 후배들을 꾸짖기도 하고 그만두려는
동료에게 무릎꿇고 함께 하자고 매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고와 나츠의 노력은 엇박자가 계속 나고
결국 나츠는 지쳐 매니저를 그만둬버린다.

그리고 고 주장은 어쨌거나 팀을 추스르고
가을 대항전에 참가한다.

나츠는 진학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매니저 없이 시합하고 있을 그녀의
동료들, 축구부를 생각하다 결국 경기장으로
달려간다.

역시나 산노 축구부는 형편없이 지고 있다.

나츠는 경기장에 도착해 "힘내"라고 외친다.

영화는 여기서 뚝 그치며 끝난다.

2014년에 <마지막 응원>을 본 소감은 실로
기이했다.

1990년대 중반, "슬램덩크"와 이와이 순지의
가슴시린 청춘 영화들을 보는 느낌을 근 20여 년
만에 되찾은 기분이랄까... 그런데 왜 2014년에
이런 영화가 툭 튀어나온걸까?



여기엔 꽃미남 아이돌 가수들이 교복만 입고
청춘영화라고 포장하는 허위도 없고,
교복입은 괴물같은 의사소통 불가의 생명체도
보이지 않는다.

장기불황과 붕괴된 가정 때문에 극단적인
일탈을 감행하는 군상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 주변의 평범한, 하지만 각자의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고딩들이 보일 뿐이다.

대학입시나 취업문제는 물론 그들에게도 무거운
짐일텐데 하지만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의 편린에 충실하고자
각자의 희생과 아픔을 감내한다.

물론 미숙하기 짝이 없고, 실수연발에 시행착오로
결과도 그리 좋게 나오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찌 보면 찬란하고 다르게 보면 초라한
그들의 찰나는 시리도록 아프다가도 불꽃처럼
환하게 보이기도 한다.



"아프니까 청춘"인 게 아니고 "청춘"이기 때문에
저렇게 아파할 수도 있는게다. 스스로 선택한
시행착오는 그들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혹은
풋풋한 한때의 기억으로 그들만의 앨범에 남게
될 테니까.

그렇게 <마지막 응원>은 기묘한 타임슬립의
기억으로 새겨졌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갑자기 한 떼의
남녀가 무대로 올라왔다.

알고보니 감독과 배우들이다.

아마 그들로선 해외영화제에 생전 처음 올라오는
무대일 것이다.

감독 사토 타쿠마는 1989년생. 그리고 그와 함께
올라온 배우들의 대부분은 감독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극장에서 함께 팝콘을 튀기거나 청소를
하거나 매표와 안내를 하던 이들이었다.

주장과 매니저를 맡은 친구들만 전업배우이거나
이제 연기 워크숍을 겨우 마친 초짜배우였다.

그들은 어떻게 각각의 배우를 찾아냈고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 - 감독이 원래 축구부
출신이라더라 - 등을 왁자지껄하게 이야기했다.

70분에 불과한 장편영화로선 거의 최소분량의
러닝타임. 축구부의 땀냄새나는 좁은 부실과
운동장, 그리고 동네 골목이 길지 않은 시간동안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대부분의 공간이었고
배우들은 아마추어 티가 팍팍 나는 비전문 연기자들인데
묘하게 그들은 너무 적절하게 분위기에 어우러졌다.

아마 감독이 별다른 연출욕심을 부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체험을 스크린에 옮기는데 집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돈이 없기 때문에 프로 연기자를
투입하지 못했던 것은 오히려 평범한 축구부를
재현하는데 더없는 화학작용으로 확인되었다.

영화 상영에서 관객과의 대화로 이어지는 시간은
- 다 합치면 100여 분 남짓했을 것이다 -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화 속 공기를 관객과 배우, 감독이
함께 호흡하는 대기권으로 이어졌다.

부산에서 십여 차례의 GV를 올해에도 치렀지만
관객과 영화가 친숙한 분위기로 이렇게 흘러간
GV는 <마지막 응원>이 거의 유일했던 것 같다.

나머지 좋은 GV들은 감독의 명작에 관객들이
찬양을 바치는 자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응원>의 배우들은 곧잘 부산에서
마주칠 수 있었다. 그들은 즐겁게 다른 영화를
관객의 입장에서 보러 다녔고, 영화제 관계자들과
어울리는 술자리에선 영화계 신인 티를 팍팍
내면서 부지런히 인사하고 그들을 알아봐주는
이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심지어 술자리에서 마주치자 '퀘스쳔 퀘스쳔'
을 연발하며 관객과의 대화 때 질문을 날렸던
사실을 기억해내기도 했다.

분명히 <마지막 응원>은 아주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국내에서 많은 이들이
접할 기회도 아마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응원>이 재현한 지난 세대의
청춘의 기억, 그리고 영화 속 인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던 아마추어 배우들의 밝은
표정은 1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특별한 체험 중
하나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by 붉은10월 | 2014/10/21 23:24 | 2014 BIFF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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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bender at 2014/10/26 01:55
재밌겠네요 요즘 추워져서 그런가 이상하게 청춘물이 끌려요;;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14/10/26 16:24
청춘물은 스산할 때가 제맛이 나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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