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갈증", 카나코가 창조한 영겁의 거울지옥
포스터 정중앙에 아름다운 소녀가 서 있다.
그녀의 이름은 후지시마 카나코...

"천사 같은 나의 딸을 찾습니다"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제목은 '갈증'이고 2014년 12월 개봉예정인 듯 하다.

영화 <갈증>의 국내개봉홍보 포스터 이미지다.

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 공식 최초 상영된
<갈증>을 이미 본 입장에서 저 포스터는 극악한 장난이다.

저 소녀는 지옥에서 온 천사라면 천사랄까...

영화 속에서 저 천사 같은 소녀에 의해 <테이큰>에서
리암 니슨이 해치우는 수 만큼의 킬 사인이 나온다.

물론 저 소녀가 일본도를 휘두르거나 하진 않는다.

다만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갈증>의 영문제목은 World of Kanako.
카나코의 세계가 2시간 여 동안 펼쳐진다.

분명 사람사는 세상 이야기, 그것도 먹고 살 만한데다
치안도 괜찮고 사회복지도 그럭저럭 이뤄지는 옆 동네
이야기인데 두 시간 내내 나는 지옥을 보았다.

지옥 바닥에 떨어져 이제 올라갈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제 겨우 영겁의 지옥문 입구에서 어기적거리는
중이었더라. 계속 무간지옥으로 떨어지면서 심장은 쿵쾅,
손발은 허우적거리다 다행히 상영시간이 끝나는 바람에
빠져나왔다.

실은 그런 줄 알았는데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참석한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나카시마 감독은 유리구슬 같은 투명한 눈으로 아무렇지
않게 냉소적인 답변을 툭툭 던졌다.

감독은 자신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대체 감독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색일까.

전작 <고백>을 봤을 때는 푸르스름한, 건드리면 베일 것
같은 시리도록 차가운 금속성의 고요한 지옥인 줄 알았다.

<갈증>을 보니 <고백>의 지옥은 림보였다.

총천연색 불길처럼 뜨거운 지옥이 줄줄이 이어졌다.

끔찍하게도 그 불지옥은 끝이 없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눈덮인 설원은 얼어붙은 불지옥이더라.

영화의 장면장면 이미지를 떠올리며 유리알처럼 투명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눈동자를 응시하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저 감독은 정말 자기가 영화를 만드는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있구나. 오싹했다. 왜 저 불세출의 비쥬얼리스트가
저런 염세적인 세계관을 갖게 된 걸까.


(이하 부분에는 영화 관람을 방해하는
매우 짙은 농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이전 작품들처럼 최신작 <갈증>
역시 일본 장르문학의 대표적 문학상 중 하나인
"이 미스테리가 대단하다" 수상작 <끝없는 갈증>을
원작으로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전 작품의 원작들이
모두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 있는데 반해 이번 영화의 원작소설은
아직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만을 통해 독해한
내용은 지극히 미흡할 수 있다.

- 원작에서는 카나코가 왜 자신만의 지옥을 창조했는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고 들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과감하게 그 부분을 덜어낸 것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부분이 정말 궁금하다. 국내개봉을 전후해
소설원작도 출판되길 고대하는 중이다. -

전작 <고백>이 미나토 가나에의 원작처럼 동일한 사건에
대한 등장인물 각자의 시각으로 본 해석과 독백을 조립하듯
진행한다면 이번 <갈증>은 아예 처음부터 속도를 최대로
높힌 두 대의 스포츠카가 치고박으며 경주를 벌이는 모양새로
굴러간다.

카나코의 동급생인 왕따 미소년 '나'가 지켜보는 3년 전의
카나코와 그 주변의 세계, 그리고 잃어버린 카나코를 찾는
아버지 역의 야쿠쇼 코지가 막장으로 질주하는 현재의 세계가
평행우주처럼 펼쳐진다.

처음부터 쇼바를 끝까지 올리고 속도를 줄이지 않기 때문에
원작을 모르는 상태에서 두개의 상이한 우주가 순간적으로
교차하는 롤러코스터에서 떨어지면 스토리텔링에서 이탈되기
쉽상이다. 그만큼 빠르고 정신차리기 힘들다.

아마 사전정보 없이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갈증>의
스토리라인을 100% 소화하는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만큼 격렬하다.

거칠게 스토리라인을 요약하자면 두 개의 스토리가
교차하며 때로는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며 진행된다.

스캔들에 휘말려 사직한 과거의 고위경찰 야쿠쇼 코지는
이혼한 부인의 다급한 전화를 받는다.

총명하고 아름다운 외동딸 카나코가 실종되었다고 한다.

야쿠쇼 코지는 딸을 찾아 가정을 회복하기 위해
과거의 강력계 형사다운 무지막지한 방식으로
그만의 수사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착한 딸이 나쁜 길로 빠져들었다고 생각하고
주변인들을 갈구고 패가면서 딸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하지만 그녀의 친구들은 정작 카나코에 대해 제대로
아는게 없고, 뭘 좀 아는 것 같은 이들은 죽거나
사라지거나 카나코에 대해 몸서리쳐한다.

카나코는 순결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제 야쿠쇼 코지의 기이한
모험이 시작된다.

현재의 세계는 야쿠쇼 코지를 중심으로 하드보일드 느와르
풍으로 펼쳐진다. 딸을 찾아 참담하게 몰락한 자신의 입지를
회복하고 그림 같은 가족을 복원하려는 불가능한 필사의
노력으로 절규하며 질주하는 야쿠쇼 코지는 구르고 쳐맞고
두들겨패면서 2시간 동안 20세기 중반 하드보일드 영화의
악당과 구별되지 않는 탐정을 재현한다.


과거의 세계에서 카나코는 마녀에 버금가는 거역할 수 없는
마력으로 그녀가 지배하는 소우주를 건설하고 수많은 이들을
파멸시킨다. 이 부분은 마치 <고백>의 중1들이 단죄받지 않고
3년 정도 더 지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의 하이퍼 버전에 가깝다.


야쿠쇼 코지의 느와르풍 세계는 철저하게 고전 하드보일드물에
가깝게 재현된다. 사운드트랙부터 카메라의 속도감, 어찌보면
익숙한 클리셰의 컷 연출까지 총체적이다.

반면에 카나코의 팝아트풍 세계는 사이버펑크물과 학원물의
혼종교배를 보는 느낌이다. 발랄하다 못해 비현실적인 뿅뿅
사운드와 정신없는 키치적인 팝 컬쳐가 어우러진다.

얼핏 보면 귀엽고 발랄한 그 세계는 하지만 정말 <고백>의
작은 악마들이 안좋은 방향으로 진화했을 때 보여주는 모든걸
움켜쥐고 있다. 왕따와 마약, 원조교제는 기본설정에
가깝게 자연스럽고, 신체훼손과 살인도 거리낌없이 행해지는
곳이다.


카나코가 왜 자신의 세계를 지옥으로 설정해 창조했는지는
영화 끝까지 뾰족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몇 가지 추측이
등장하지만 정작 카나코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녀는 지극히 동정을 살 만한 원인에서 출발해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지옥으로 끌고가려 했을 수도 있지만 그냥 중2병적인
집착으로 그랬을 수도 있다. 이 부분의 축약은 2차원 텍스트와
3차원 이미지 사이의 표현방식의 상이함으로 감독이 결단한
부분일텐데 원작을 보진 못했지만 나카시마 감독의 연출
스타일로 볼 때 합당한 의역이란 생각이다.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문제라면,
기승전결 스토리텔링이 뭔가요 먹는 건가요
우적우적 씹어먹어버리고 두개의 평행세계를
러시안룰렛하듯 몰아붙이면서 비쥬얼 테러를
감행하는 감독의 가공할 이미지 연출력 때문에
지독하게 끔찍한 설정이 POP스럽게 느껴지고
초반부터 밀어부친 파격적인 이미지와 연출
때문에 관객들의 감각이 둔화되어 멍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끝까지 질질 끌려가버린다는
점인데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비쥬얼에 집착을
한다기보다 일관되게 그러한 과장된 연출 스타일을
통해 하이브리드한 모순을 던져주는 걸 즐기는
것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분명 관객에게 과부하를 주는 건 맞다.

<고백>의 경우에도 감당할 수 없는 정서적 충격을
주지만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고 각 챕터별로
한층 한층 쌓아올리듯 누적형으로 흘러가므로 다소
견딜 수가 있는데(그러다 막판에 꽝! 해버려서 겨우
버티던 관객을 케이오시켜버리는 악취미가 있긴
했지만 SO SO...)

<갈증>은 그런 정직한 전개와는 담을 쌓은 채
시각적으로는 총천연색 물감을 마꾸 뿌려대며
청각적으로는 장르가 다른 영화 대여섯편에 들어갈
사운드를 5분 전후로 교체해가며 RPM 왕창 올려서
마구 틀어재끼는 통에 찰나의 여운을 통해 관객 스스로
스크린을 통해 체험한 것들을 조합해 독자적으로
형상화할 여유를 조금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전작 <고백>에서 뒷골이 서늘하게 되는
순간이 관객의 자발적 구현에 의한 것이라면
<갈증>은 청룡열차에서 안전벨트에 꽉 묶여진 채
주어진 코스에 따라 비명질러대는 수동태로
가게 되는 단점이 분명히 있다.

그 대신에 전적으로 감독의 스타일을 믿고 신뢰하거나
보여주는 것을 갈데까지 따라가보겠다는 관객과
조우한다면 아마 극한의 이미지로 각인될 것이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전작 <고백>의 성공으로
획득한 강점. 배우들을 갈아넣다시피 하는 초호화
캐스팅은 안그래도 시각적으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갈증>의 파괴력을 차원이 다른 급으로
격상시킨다.

이 포스터를 보라.

충격! 폭발! 광기!의 소용돌이에
기꺼이 탑승한 주연급의 면면이다.

좌측 맨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야쿠쇼 코지 - 코마츠 나나 - 츠마부키 사토시
- 니카이도 후미 - 나카타니 미키 - 오다기리 죠
- 시미즈 히로야 - 하시모토 아이 순이다.

쿠니무라 준이나 모리카와 아오이는
상당한 비중에도 불구하고 포스터에
얼굴도 못 나오는 지경이다.(덜덜)



야쿠쇼 코지는 정말 몇십년만에 하드보일드 캐릭터로
영화 내내 죽을 고생을 한다.
(그 고생 끝에 지옥을 목도하게 되니 진정한 지옥인간)

그는 뭔가 새출발하고 잘해보려 하지만 왜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졌는지를 전혀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며
과오를 고쳐서 갱생할 의지도 없다.


다만 위악적으로 자신을 속이고 주변을 윽박지르며
힘으로 헤쳐나가려 할 뿐이다. 하지만 마치 덫에 걸린
곰처럼 그는 계속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며 발목의
고통은 벗어나려면 할수록 더욱 옥죄어오는 덫의
날과도 같다. 그는 자신의 방법으로 분투할수록 더욱
더 카나코가 파놓은 함정에 끌려들어갈 뿐이다.

그는 카나코를 되찾고 싶어하는 동시에 그녀를
두려워한다. 그녀를 감당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마초적 본성은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카나코를 가부장적 권위 하에 지배하고
싶어하지만 이미 중반부터 그것이 부질없는
짓임을 안다. 혈연에 대한 집착과 동시에 자신과
다른 의미로 너무나 같고도 다른 성스러운 괴물처럼
되어버린 딸에 대한 혐오가 폭발적으로 팽창한다.

결국 될대로되라!가 이 무간지옥 청룡열차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무력한 가장에게 주어진 형벌인
셈이다.


아무리 나름대로 온갖 짓을 해 가며
쏟아진 모래 같은 과거를 복원하려는
환상을 추종하지만 결국 야쿠쇼 코지가
찾아낸 것은 허무 혹은 완전한 실패다.

이는 마치 크툴루 신화 속에서 아무리
범용한 인간 주인공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봐야
파멸할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결말이다.

그 결말을 야쿠쇼 코지도, 그를 지켜보는
관객도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불가사의한 집착으로
질주한다. 초인적인 힘으로...

과연 그 힘의 원천은 무엇에서 오는 걸까?

츠마부키 사토시는 스스로를 파멸로 달려가는
야쿠쇼 코지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약간은
전지적 시점에서 이 막장극을 관전한다.


그러나 물론 그에게도 수행해야 할 미션이 있다.

이 지점에서 츠마부키 사토시는 계속 등장하는
야쿠쟈 행동대장과 롤이 겹친다.

둘 다 카나코의 세계에서 파생된 현실의 문제를
정리해야할 입장이다.

어찌보면 가장 직접적으로 카나코가 건설한 세계를
무너뜨려야할 입장의 인물들이다.

그들은 현실체제의 질서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른
한 소녀가 창조한 기괴한 소우주를 지워버려야 한다.

점잖은 척 하는 민중의 지팡이나, 더러운 짓 전문의
야쿠쟈나 이 지점에선 동일한 존재이다.

그들은 무자비하게, 때로는 비웃듯이 사건의 관련자들을
지워나간다. 물론 피비린내나는 방식으로...

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들이 제거해야할 가장 큰 숙적인
카나코에게는 접근하지 못한다. 카나코는 어른들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은 카나코라는 기괴한 존재에
대해 어찌할 수가 없다.

대신에 카나코에게 이용당하던 존재들은 그녀를 대신해
하나씩 제거된다. 끔찍하고 무자비한 방식으로.

그녀의 수족처럼 충실하던 마약상 심복도,
카나코의 마력에 빠져 마약이건 매춘이건
가리지 않고 그녀를 추종하던 소녀도
모두 죽는다. 끔찍하게...

하지만 카나코는 마치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닌
것처럼 계속 그들 주변을 부유하듯 흘러다닌다.



오다기리 죠는 야쿠쇼 코지와는 같은듯 다른듯
역시 고립된 괴물 같은 존재이다.

영화 후반부에 현재의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 중 하나인 가정을 모두 잃은 남자와
가정을 잃을 위기에 처한 남자의 대결에서
두 남자는 기이한 버디무비를 찍는다.

야쿠쇼 코지는 딸이라는 존재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괴물이라는 것을 직감하면서 희미해져가는
자신의 동력을 그와는 반대로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오다기리 죠를 파멸시키는
쾌락에서 얻는 것처럼 보인다.

둘의 대결은 결코 선악의 대립이 아니며
똑같은 악,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안주할
수 없는 변두리의 서로 잡아먹거나 먹혀야할
외톨이 야수들의 싸움에 가깝다.

그들은 결국 경시청과 야쿠자(그리고 그들
배후에 있는 정관계와 재력가들)에게는
소모품과도 같다.

야쿠쇼 코지의 자기붕괴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키기 위한 가상의 복수극에 휘말린
가정파괴극이라고 해야할까.

현실의 세계는 그렇게 장르적 쾌감과
악인과 악인의 대결과 그 위에 더 강위력한
악의 체제의 견고함을 보여주는 진저리나는
풍경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또다른 과거의 세계는 어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들만의 지옥이다.

평범해보이는 학교는 이지메가 판치는
정글이며, 젊은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클럽은 마약과 매춘이 판을 치는 공감이다.

카나코는 불가사의한 마력으로 그 세계를
장악하고 스스로까지 파괴하면서 지배력을
넓혀나간다.

모두가 카나코를 좋아하고 사모하며
그녀의 명령에 조종당한다.

그녀가 타인들을 파멸시키는 행위의
이유가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이 세계에
대한 해석은 지극히 자의적으로 관객 각자에게
내맡겨진다.

<고백>의 하이퍼 지옥도라고 생각하면
별 거부감 없이 이 화려하고 끔찍한 가공할
부조리한 소우주를 즐길 수 있겠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폭력적 이미지만 남용한다고
보기 시작하면 마치 이라크 포로들을 고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소음을 이용한 비폭력 고문기구
을 체험하는 꼴이 될 것이다.

이 세계의 존재들은 나레이션을 맡은
소년 '나'를 포함해 모두 카나코의 노예들과 같다.

현실의 세계에서 카나코의 무서움을 증언하는
하시모토 아이의 경우 두 세계의 가교가 되는,
일종의 가이드와 같은 존재이다.

과거의 세계가 그나마 야쿠쇼 코지의
길을 따라 어느 정도 추적이 가능한 수준의
스토리로 질주하는 현재의 세계에 비해
몇 배는 더 모호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하시모토 아이라는 터미널은 관객에게
찰나의 숨쉴틈을 준다고도 볼 수 있다.

<고백>의 미즈키 반장님이 저렇게 3년만에
훌쩍 커버릴 줄이야...

'나'를 둘러싼 에피소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스포일러이기도 하고 글로 표현하기가
참 애매한 부분이기도 하니깐.



다만 유혈낭자한 현재의 세계보다 몇 배는
더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과거의 세계라는
것을 감안하면 될 것이다.

카나코의 세계인 만큼 날고 기는 배우들이
명연기를 펼치지만 그/그녀들은 모두
카나코의 거미줄에서 퍼덕대는 나방에
불과할 따름이다.


동년배 여배우 중 최강의 연기력을 가진
니카이도 후미가 극중에서 절규하는 부분은
철저하게 카나코의 세계에 종속당한 극중
그녀의 캐릭터를 절묘하게 상징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다시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면서
야쿠쇼 코지의 불안을 끝장내버리는 가이드로
카나코의 담임이었던 나카타니 미키가 등장한다.


그녀는 <고백>의 마츠 다카코의 또다른
버전으로 보인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교사와는
전혀 정반대의 교사 캐릭터로 정신없이
내달려온 2시간을 정리하는 가이드 역할을
수행하는 그녀 역시 또다른 의미의 괴물이다.

그리고 그녀에 의해,
무사안일주의로 제자들이 파멸로
향하는 것을 전혀 제지하지 않으려 했던...
그런 그녀에 의해 이 종국무간도는 싱거울 정도로
결말부를 맞게 된다.

후반부, 악과 파괴로 치닫는 무간지옥 같은
끝없는 질주는 야쿠쇼 코지와 나카타니 미키가
향한 눈 덮인 설원에서 느닷없이 멈춘다.

이미 괴물이 되어버린 야쿠쇼 코지는
같은 괴물인 카나코를 찾아헤메고
또다른 괴물인 나카타니 미키는
멍하고 질린 표정으로 그 옆에 있다.

카나코는 스크린 속 세계의 조물주다.

카나코를 찾을 필요가 없는데도
부질없는 짓을 끝까지 놓지 않는
야쿠쇼 코지의 집념은 동족혐오와
혈연집착이라는 원초적 감정의 단말마적
표출에 불과하다.

그저 알파이자 오메가인 거대한 맥거핀 카나코.

전지적인 시점 - 신에게만 부여된 - 으로
카나코는 어른들의 멍청함과 위선을 그렇게
내려다보고 있다.

결국 이 영화 속에서 카나코의 거미줄에
파멸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악인이 될 수 밖에
없다. 자기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해쳐야만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세계.


그리고 그 속에서 위선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은 어른들의 전매특허이다.

카나코는 그런 어른들의 위선을 조소하기 위해
자신과 주변 아이들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지옥의 조크를 그려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 진실은
어쩌면 그녀 자신도 답을 가지지
않은 끝이 없는 심연의 미궁일지도 모른다.

원작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즐겨읽는 카나코... 자세히 보면 <거울 나라의 앨리스>
로 보인다. 우리가 아는 <앨리스>는 사실 <앨리스>
연작의 맛뵈기에 불과하고 <거울 나라의 ~ >부터
펼쳐지는 부조리한 그로테스크의 세계를 아는
이들이라면 카나코라는 존재가 논리로 해석되는
대상이 아님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비약하면
카나코와 아키카주(야쿠쇼 코지), 두 부녀지간의
기이한 버디무비로 <갈증>을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함께 평행세계에서 파멸로 나아가는 부녀라...

야쿠쇼 코지가 후반부 어디선가 중얼거리던 대사...

"그녀는 나다..."

카나코는 아키카주다.
거울 나라의 카나코...
어른들의 추악함을 고스란히 담은
거울 나라의 여왕 혹은 여신...

영화 속에 나왔던 지옥의 이미지들.

야쿠쇼 코지가 보고 절규하던 지옥도는
굳이 올리지 않겠다. 영화를 보면 심연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어떤건지 체험하게 될테니...

카나코 역을 맡은 코마츠 나나는 이번이
영화 데뷔작이다.

나카시마 테츠야가 간택한 이 96년생 신인여배우는
영문제목 그대로 2시간 동안 스크린과 관객을 지배한다.

만약 그녀가 이후로 <갈증>에서 보여준 이미지를
스크린에서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성공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코마츠 나나의 비쥬얼은 강력하다.


CF와 패션모델로 꽤 촉망받는 소녀였지만 영화 속에서의
카나코가 다른 모든 이미지를 초월한다.

카나코의 세계에서 그녀는 자신의 결핍과 붕괴를
끔찍하고 화려한 방법으로 확대재생산해 세계를
창조하는 조물주이다. 저렇게 아름다운 생물이 있을까
경탄할 만큼... 그리고 곧 잡아먹힐 것을 알면서도...


그런 카나코의 세계를 창조해버린 나카시마 테츠야의
<갈증>. 압도적인 비쥬얼과 따라가기 힘겨운 스토리.
이 모든게 카나코가 창조한 지옥을 구현하기 위한
집요함의 결과물이다. 감독의 의도에 따라오거나
말거나는 관객 몫이겠지만. "거장"이라는 칭호에
근접하는 정도는 되어야 해낼 수 있는 작업을
나카시마 테츠야는 이뤄낸 것 같다.

by 붉은10월 | 2014/10/28 23:06 | 2014 BIFF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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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4/11/20 12:1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4/11/20 21:35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at 2014/12/10 12: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14/12/10 13:08
1. 광고영상 출신이라는 걸 입증하는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비쥬얼 연출 실험의 극단
+
2. 세상은 절대로 결단코 아름답지 않다는 감독 자신의 철학을
제대로 구현한 원작소설
싱크로가 맞아떨어져 관객을 가리는 기이한 작품이 나온 셈이죠.

단순한 고어나 막장극과는 다른 게 감독 자신의 신념을
극단적으로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혹은 파괴적인 이미지로
잘 구현해버려서 픽션으로만 보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완전한
리얼리즘으로 이해하기도 힘들다는 점입니다.

호불호를 떠나 상업영화 틀 내에서 이렇게 감독의 자의식이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기도 쉽잖을텐데...

감독의 차기작이 그냥 기다려지는 부분이지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오래됨 at 2016/07/26 02:27
하... 이 영화 보려고 썩혀둔게 2년째네요
드디어 봐버렸습니다... 후폭풍이 엄청납니다...
아직도 카나코가 머릿속에서 잊혀지질 않네요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16/07/27 09:03
고생하셨습니다. 삼가 애도를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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