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bbit] "패스티토칼론"에 대한 노래 혹은 시






샤이어 시골 구석에서 유한계급
신사로 잘 먹고 잘 살던 빌보는
온갖 음모를 꾸미고 다니던 마법사
간달프에 의해 에레보르 원정에
끌려갔다 온 이후로 삶이 상당히
심하게 달라졌습니다.



그는 수십년 후까지 샤이어
인근에서 술자리 가십거리가 된
전설적인 부자가 되었습니다만,
대신에 이웃들의 존경을 잃었다고
원작에서도 묘사되고 있지요.









샤이어 사람들은 소박하고 정직하며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
(대식, 치장, 선물, 일과 후 음주 등)
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었지만,
대신에 외부 사정에 무지하고 아예
관심도 없으며 자신들의 시야로만
세상을 재단하는 편견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폐쇄적인 면모는 그들
호빗이 '큰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위축감과, 그들의 먼 선조들이
위험으로 가득 찬 가운데땅을
횡단하는 대장정을 통해 지금의
샤이어 일대에 정착하게 되는
고난의 기억에서 비롯되었을
테지만요.




그래서 일상의 이야기가 주로
화제가 되는 샤이어 호빗들의
세계이지만, 가끔씩은 먼 과거의
기억에서 유래된 전승 이야기가
몇몇 언급되곤 하는데, 아래의
시(혹은 노래)는 그런 전승들을
수집해 빌보가 (할 일이 별로
없는 나머지) 작성하고 프로도가
마무리한 "서끝말의 붉은 책"에
기록되었다고 전해지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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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티토칼론 Fastitocalon




* 중세 동물 우화집에 나오는
거대한 바다 괴물로 섬처럼 보여
선원들을 유인한다.









보라, 패스티토칼론이 저기 있다!




다소 휑뎅그렁하기는 하지만
상륙하기 좋은 섬.




자, 바다를 벗어나라! 햇빛을 받으며
달리고, 춤추고, 누워있자!




보라, 갈매기들이 저기 있다!




조심!




갈매기는 물에 빠지지 않아.




앉아있거나 으쓱이며 걸어다니거나 깃털을 다듬지.




그들의 역할은 눈짓으로 살짝 알려주는 것,
누군가 감히
그 섬에 정착하려 하거나
잠시 아픔을 덜거나 젖은 몸을 말리거나
혹 찻물을 끓이려 한다면.



아, 어리석은 자들, 그 몸에 상륙하여
조그마한 불을 피워
차를 마시고 싶어 하다니!







그 껍질은 두꺼울지 모르지,
잠들어 있는 듯 보이고, 하지만 몸은 잽싸다네,
지금은 간계하게도
바다에 떠있지만.



가벼운 발걸음 소리를 듣거나
갑작스런 열기를 어렴풋이 느끼면
미소를 지으며
물속으로 첨벙,
즉시 뒤집어엎고
기울여 떨어뜨리지.









어리벙벙한 가운데
물속 깊이 가라앉아
그들은 어리석은 목숨을 잃는다네.



현명하게 행동할 것!



바다에는 괴물들이 많지만,
그처럼 위험한 것은 없지,
뿔 달린 늙은 패스티토칼론,
강력한 그의 친척들은 모두 사라졌지,
늙은 거북 - 물고기의 마지막 후예.







그러니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이렇게 충고하지.



선원들에게 전승된 옛 지식을 무시하지 말 것,
지도에 나오지 않는 해안에는 발을 들여놓지 말 것!








그보다 더 나은 것은,
가운데땅에서 평화로이
유쾌하게 네 나날을 마칠 것!



<위험천만 왕국 이야기>
[톰 봄바딜의 모험] 중
{패스티토칼론} 시 혹은 노래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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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호빗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가
시와 노래 형태로 구전되어왔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호빗들의 대장정에서도 동부 내륙에서
서부로 이동해왔지만 안두인 대하를
건넌 것 외에는 바다 근방으로 거쳐올
경로가 전무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그들이 이동 과정에서 만난
다른 종족들 또한 바다에 대한 그런
경험을 가질만한 이들은 아니었구요.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호빗들 중
다른 종족, 특히 요정들과 교류가
과거에 있었다고 전해내려오는
(사실여부 진위는 모호합니다만)
하얀금발 혈통들이 전해듣거나 한
내용들을 신비롭게 부풀려 각색한
정도일까요.



사실 <패스티토칼론>은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신밧드의 모험 에피소드
등에도 등장하는, 당시 대서양에서
인도양에 이르는 해상 교역로의
뱃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꽤 유명한
전설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톰 봄바딜의 모험>에서
발췌한 <붉은 책>의 이 노래는
맨 마지막 구절에 샤이어 호빗들의
보수적인 면모를 가미하며 끝을
맺습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니 안 가본 데
가지 말고 모르는 일 건드리지 말자는
호빗 종족 특유의 색깔이 가미된
교훈시라고나 할까요.









빌보가 원작과 영화 마지막에
귀향 이후 벌어졌던 소동극과,
이후 <반지원정대>에서 빌보를
둘러싼 청룡정 여관의 숙덕거림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호빗들의
저런 악의없는, 하지만 외부인들에겐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저런 면모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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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책>에는 많은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반지 군주의 몰락] 서사와 그에 첨부된
이야기들 및 연대기에는 몇 편의 시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보다 더 많은 시들이 떨어진 낱장에
기록되어 있었으며 몇 편은 부주의하게도
여백과 빈 공간에 적혀 있기도 하다.







이런 시들은 대부분 무의미한 것들이며,
해독할 수는 있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태반이고, 혹은 절반쯤 기억된 단편들에
불과하다.



이 시는 이처럼 여백에 적혀 있는 것을
모은 것이다.



(중략)



제3시대 말의 사건들이 샤이어에 미친 영향과,
리벤델이나 곤도르와 접촉하면서 샤이어의
시야가 확대되었다는 점은 다른 시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략)



바다에 관한 생각은 호빗들의 상상력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제3시대 말 샤이어에서는 바다에 대한
두려움과 요정들의 온갖 학식에 대한 불신이
지배적인 풍조로 자리 잡았으며, 분명 그 풍조가
그 시대를 종결지은 사건들과 변화들에 의해서
완전히 일소된 것은 아니었다.



<위험천만 왕국 이야기>
[톰 봄바딜의 모험] 중 서문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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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낯선 이들에 대한 경계와 자기방어본능은
호빗 같이 평화를 사랑하는 작은 종족에겐
어쩔 수 없는 특징일 터입니다.



그리고 그런 측면이 굳어지면서 배타적인
면모로 드러나는 것일 테구요.








빌보의 뒤를 이어 샤이어에서는 '기이한'
일들과 그에 영향을 받은 '철없는' 모험가
호빗들이 속속 등장했고,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은 경탄과 부정 속에서
오랫동안 청룡정 여관 술자리 안주꺼리로
각광받았을 것입니다.








그런 풍경을 떠올리며, 지금도 세상
어디에선가 큰사람들 눈에 안 띄게
조용하고 분수에 맞게 살고 있을
호빗들을 생각해 보아요......




by 붉은10월 | 2015/01/12 10:11 | 엘다르의 시와 노래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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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Oryn. at 2015/01/12 14:38
오 디즈니판 알라딘이 생각나는 거북섬이로군요 ㅎㅎ
사실 책으로 읽을 때는 호빗들의 이런 성향이 좀 답답하기도 하더라구요. 하지만 아마 시간이 지나고 그닥 달라지지 않을 듯한...:)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15/01/12 15:41
그들의 일면이 다른 이면을 만드니까요.
그런 장점과 단점이 어우러져 형성된 종족인데
싫다고 어느 한 부분만 빼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첫번째 종족과 두번째 종족의 이점만 챙기려던
누메노르인의 파멸이나, 유한한 생명의 땅의 자유를
누리면서 불사의 땅에서 얻는 축복도 다 가지려던
놀도르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본다면 결국 분수에 맞게
살자는 가르침이 -_-
Commented by 블랙하트 at 2015/01/12 19:47
톨킨 백과사전의 해당항목에 '이 이야기는 사실 [아칼라베스]에 전해지는 누메노르 왕국의 침몰을 우화적으로 빗대어 말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태양 제2시대에 거대한 누메노르 섬이, 이야기속의 파스티토칼론처럼,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주민의 대다수도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다.' 라는 설명이 있더군요.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15/01/12 20:01
그렇지요. 그 부분은 나중에 써먹으려고 일부러 빼놨는데
언급해 버리시다니 에구구구 ~

누메노르의 몰락 부분에서 곁가지로 언급할 생각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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