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TR] 곤도르 통치섭정의 역사



대국 곤도르의 역사에서 재통합
왕국이 재건되기 전까지의 천년(!)
동안은 왕이 없었습니다.



왕이 없는데 왕국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던 걸까요?



왕의 권한을 대행하는 섭정의
통치가 1천년 동안 이어지면서
국가를 유지해왔기 때문이지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섭정은
존재했으나 왕이 없던 기나긴
시절의 섭정은 '통치섭정'이라
불리며 상시적인 군주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통치섭정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파라미르의 입을 빌어
통치섭정에 대한 소개를 시작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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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널리 퍼지지 않은
고대의 지식 중 많은 부분이
미나스 티리스의 지배자에게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아두기 바라오.



비록 우리의 몸 속에도
누메노르인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사실 우리 가문은
엘렌딜의 혈통은 아니오.



우리는 우리의 혈통이,
왕이 전쟁에 나가고 없을 때
그를 대신해 지배한 훌륭한
섭정 마르딜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알고 있소.



곤도르 최후의 왕은 아나리온
왕족의 마지막 혈통이던
에아르누르 왕이었는데,
그는 후사가 없는 데다
전쟁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지.








아주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그때부터 섭정 가문이 도시를
통치해 온 것이오."



<반지의 제왕 - 두개의 탑>
[일몰의 창]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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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도르의 섭정은 왕의 신하 중
유능한 자가 뽑히는 재상이라기보단,
왕의 뒤를 이은 2인자 개념으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사실상 섭정직 역시 마르딜의
선조부터 계속 이어져내려온
직위였으니까요.







그리고 아득한 먼 옛날,
곤도르의 마지막 왕 에아르누르가
실종되고 나서 천년 넘게 계속
이 가문은 곤도르를 통치해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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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 섭정들



마르딜 2080



에라단 2116







헤리온 2148



벨레고른 2204



후린 1세 2244







투린 1세 2278



하도르 2395



바라히르 2412



디오르 2435 



데네소르 1세 2477



보로미르 2489



키리온 2567



그의 재위시에 로한인들이
칼레나르돈에 들어왔다.








할라스 2605



후린 2세 2628



벨렉소르 1세 2655



오로드레스 2685



엑셀리온 1세 2698



에갈모스 2743



베렌 2763



베레곤드 2811



벨렉소르 2세 2872



소론디르 2882



투린 2세 2914



투르곤 2953



엑셀리온 2세 2984



데네소르 2세.



그는 마지막 통치 섭정이었으며,
에뮌 아르넨의 영주인 차남
파라미르(사망연도 제4시대 82)
가 뒤를 이어 엘렛사르 왕의
섭정이 되었다.



<반지의 제왕 - 해설편>
[왕과 통치자들의 연대기]
{해설 B - 망명 왕국들}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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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섭정은 총 26명이었습니다.



그들 각자의 통치 시기는 이상과
같으며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곤도르를 악전고투하며 유지하는
영주들이었습니다.




파라미르는 통치섭정의 권한을
돌아온 왕에게 반환하고 이후엔
마르딜 이전의 섭정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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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3년 에아르누르가 왕위를 계승하자
미나스 모르굴의 왕은 그가 과거 북방
전투에서 감히 자기 앞에 나서지
못했다고 조롱하며 1대 1로 싸우자고
도전했다.






그때는 섭정 마르딜이 왕의 분노를
진정시켰다.



텔렘나르 왕의 시대 이래로 왕국의
수도이자 궁성의 소재지인 미나스
아노르는 이제 모르굴의 사악한 힘을
밤낮 없이 경계하기 위해 미나스
티리스로 개칭되었다.







에아르누르가 왕위에 오른 지 7년이
되었을 때, 모르굴의 영주는 나약한
젊은이가 이제는 노쇠해지기까지
했다고 빈정거리며 다시 도전해 왔다.



이번에는 마르딜도 더 이상 왕을
만류할 수 없었다.



왕은 소수의 기사들만 호위대로
대동하고 미나스 모르굴의 성문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들 일행에 대한 소식은
두번 다시 들리지 않았다.



곤도르에서는 그 사악한, 수 없는
적이 왕을 함정에 빠뜨렸고, 왕이
미나스 모르굴에서 고통스런 최후를
맞았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왕의 죽음을 목격한 이가
아무도 없었기에 섭정 마르딜은
오랜 세월 동안 왕을 대신하여
곤도르를 다스렸다.



(중략)







그리하여 순수한 혈통을 지녔거나
모두가 인정할 만한 왕위 주창자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종족 분쟁을
유념하며 노심초사했다.



그와 같은 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곤도르가 멸망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섭정이 계속 곤도르를
통치했으며, 엘렌딜의 왕관은
에아르누르가 남겨 놓은 그대로
사자의 집에 누운 에아르닐 왕의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반지의 제왕 - 해설편>
[왕과 통치자들의 연대기]
{해설 D -
곤도르 그리고 아나리온의 후계자들}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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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도르의 2천년 간 이어져온
왕의 혈통이 끊어지는 과정을
설명한 대목입니다.



이미 마지막 왕 에아르누르의
이전, 그의 부친인 에아르닐 왕도
정통 왕가의 계보가 끊어지는
바람에 왕족 중에서 유능한 자가
대신 즉위한 상황이었지요.








그리고 에아르닐 왕의 시절에
북왕국 아르노르의 마지막
후예인 아르세다인이 멸망해
버렸기 때문에 에아르누르가
실종된 이후로도 왕권을 감히
주장할 정통 계승자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곤도르 내에서는 왕족이 아니라도
절대 강자가 출현하지 않았으며,
북왕국의 후계자들은 너무 미약한
세력 때문에 감히 왕권을 요구할
수가 없었지요.



이 눈치경쟁이 1천년간 지속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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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정의 가문은 후린 가로 불렸다.



그들은 미나르딜 왕(1621~1634)의
섭정이자 누메노르 귀족 혈통을 지닌
에뮌 아르넨의 후린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후린 이후 왕들은 언제나 그의
후손 가운데서 섭정을 선택했다.







그리고 펠렌두르의 시대 이후로
섭정권 또한 왕권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또는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로 세습되었다.



실제로 새로 섭정이 되는 이들은
저마다 "국왕이 귀환할 때까지
그의 이름을 빌어 나라를 다스린다"
는 서약을 하고서 취임했다.



그러나 이러한 서약은 곧 유명무실한
요식 행위가 되고 말았다.



섭정들은 왕으로서의 전권을 행사한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곤도르인들은 왕이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고 여전히
믿었다.






일부는 아직도 어둠 속에 살아 있다는
풍문이 도는 북왕국의 고대 혈통을
기억하기도 했다.



그러나 통치 섭정들은 그와 같은
생각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섭정들은 고대의
왕좌에 앉지 않았고 왕관을 쓰거나
홀을 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직권의 표시로 하얀 막대기만
지녔고, 깃발은 아무 문장도 없이
그냥 하얀색이었다.



반면에 왕의 깃발은 검은 바탕에
별 아래 꽃이 만개한 하얀 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반지의 제왕 - 해설편>
[왕과 통치자들의 연대기]
{섭정 가}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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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섭정의 선조 펠렌두르는
바로 곤도르의 왕통이 1차로
단절되었을 때, 북왕국의 군주
아르베두이가 주장한 왕권을
거부한 섭정이었습니다.



물론 펠렌두르가 왕위에 대한
야심이 있었다기보다는 당시
압도적으로 강성한 대국이던
곤도르의 지배층이 몰락해가는
북왕국의 왕가를 거부한 셈이지요.








펠렌두르는 그 과정에서 새로
즉위한 에아르닐 왕에게 강한
영향력을 가진 후원자가 된
셈이고(킹메이커 역할을 했으니)
이후 펠렌두르의 장자들이 대대로
섭정에 올랐으며 에아르닐 왕의
아들 에아르누르가 마지막 왕이
되었기 때문에 펠렌두르의 후손이
사실상 곤도르의 군주로 대를
이어 상속해갔습니다.



그러나 유서깊은 대국 곤도르는
비록 정통 계승자는 없더라도
방계 왕족과 유서 깊은 영주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통치섭정은
사실상 왕의 권력을 누리면서도
의례적인 섭정으로서의 형식을
갖춰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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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 형 보로미르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오.



우리는 함께 우리 조상들에 관한
전설과 도시의 역사를 배웠소.



그는 언제나 아버지가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소.



'만일 왕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섭정이 왕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오랜 세월이 필요할까요?'





그가 이렇게 물으면 아버지께선



'좀더 작은 왕국이었다면 아마
몇 년이면 되었겠지.



그러나 이 곤도르에서는 1만
년이라도 부족할 거다.'



하고 대답했소.



<반지의 제왕 - 두개의 탑>
[일몰의 창]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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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미르가 프로도와 샘 일행에게
자기 가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입니다.



보로미르의 저런 기질 때문에
아버지인 데네소르는 통치섭정의
계승자로 보로미르를 총애했을
테지요.



하지만 데네소르가 답변했듯이
통치섭정들은 왕의 자리를 차지할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통치섭정이 사실상 왕으로
군림하는, 명목상으로만 역사를
존중하는 태도로 일관했지요.



'왕'의 명칭만 쓰지 않는 타협일
뿐 사실상 곤도르의 왕으로 섭정
가문은 스스로 규정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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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메노르인들은 과거 그 왕국을
상실한 원인이 된 영원한 생에
대한 열망을 여전히 품고 있었기에
오히려 죽음을 상존하게 한 거요.



왕들은 자신들의 무덤을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집보다
호화롭게 지었고, 후손들의
이름보다는 옛 선인들의 영예를
더 소중하게 여겼소.



후손이 없는 영주들은 쇠락한
궁전에 앉아 문장에만 열중했으며,
무기력한 사람들 또한 밀실에
틀어박혀 불로장생약을 조제하거나
높고 차가운 탑에서 별자리만을
바라보았소.



그리고 아나리온 왕가의 마지막
왕에게는 계승자가 없었지."



<반지의 제왕 - 두개의 탑>
[일몰의 창]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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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중에 흔쾌히 왕의 귀환을
동의한 파라미르이지만 그들
가문에 내려온 전승의 기억은,
파라미르로 하여금 곤도르 왕가의
몰락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게
만듭니다.



누메노르의 후대 왕들이 스스로
몰락으로 향하게 했던 쓸데없는
집착에 대한 평가는 파라미르가
결코 호인이기만 한 것은 아니며,
아라곤이 왕으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내지 못했다면 그의 부친 정도는
아니더라도 통치권을 넘겨주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임을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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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곤도르를 통치하게 된
섭정들은 더 현명하고 운도
좋았소.






그들이 더 현명했다는 건 해안의
억센 종족과 에레드 님라이스의 
강건한 산악인들을 모집해 군세를
보강했기 때문이오.



그들은 북부의 자부심 강한
종족들과 휴전을 맺었소.



그들은 맹렬하고 용감한 인간들로서
때로 우리를 침공하기도 했지만, 거친
동부인들이나 잔인한 하라드림과는
달리 멀지만 우리의 친족이었다오."



<반지의 제왕 - 두개의 탑>
[일몰의 창]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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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미르의 이어지는 이야기들에선
자기 가문의 업적과 위업에 대한
자긍심이 묻어납니다.






특히 데네소르를 포함한 역대 섭정이
중시했던,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에
동원할 자원을 마련하고 동맹을 통해
전쟁 구도를 유리하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쓴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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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정 혈통의 시조로 여겨지는
마르딜 보론웨 이후 곤도르에는
26대이자 마지막 섭정이던
데네소르 2세 때까지 24명의
통치섭정이 있었다.



처음에 그들은 별다른 일없이
조용히 다스렸다.



왜냐하면 당시는 사우론이
신성회의의 권세 앞에서
움추러들고, 반지악령들도
모르굴 계곡에 숨어 있던
불안한 평화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네소르 1세 이후 다시는
완전한 평화가 없었고, 곤도르가
크고 공공연한 전쟁을 치르지 않을
때도 그 국경은 끊임없는 위협 속에
있었다.








데네소르 1세의 만년에 검고
힘센 오르크들인 우루크들이
처음 모르도르에서 출몰하더니,
2475년에는 이실리엔을 휩쓸고
오스길리아스를 점령했다.



당시 데네소르의 아들 보로미르
(반지원정대의 일원인 보로미르는
그에게서 이름을 딴 것이다)가
그들을 격파하고 이실리엔을
수복했다.



그러나 오스길리아스는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었고, 그 거대한
석교도 부서졌다.







이후 그곳에는 아무도 살지
않게 되었다.



보로미르는 위대한 장수여서
마술사왕조차도 그를 두려워했다.



그는 고귀하고 준수한 용모에
신체와 의지가 강한 인물이었으나,
그 전쟁에서 모르굴로부터 입은
상처 때문에 명대로 살지 못하고
고통으로 쇠해져 부친 사후 12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반지의 제왕 - 해설편>
[왕과 통치자들의 연대기]
{섭정 가}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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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정들의 고난의 역사가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특히 섭정들의 계보는 헷갈리기
일쑤인데, 이는 섭정들의 이름이
고대의 영웅과 군주들의 것을
계승했거나, 동명이인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이름들의 개성은
물려받은 이들에게 그대로
발현되는 듯, 보로미르라는
이름은 항상 대단한 무용을
가진 장수였지요.



이미 통치섭정의 지배 이전에
미나스 이실을 탈취했던 세력의
군대 주력이었던 거대 오크족,
우루크하이의 위세가 더욱 세를
강화하는 설명이 등장합니다.







이 전투종족 덕분에 그동안
사우론의 세력이 부딪힌 한계,
태양과 강에 대한 취약점이
많이 해결되어 이제 그들의
대군은 안두인대하를 놓고
곤도르와 수백년에 걸친 장구한
일진일퇴를 시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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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미르 이후 키리온의 오랜
통치가 시작되었다.



그는 경계심이 많고 신중했다.



그러나 그의 재위 기간 중
곤도르의 힘이 미치는 범위가
현격하게 줄어들어, 그는 자국
국경을 방비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었다.



반면 적들은(또는 그들을
움직이는 힘은) 그를 칠 준비를
했는데, 그로서는 막을 도리가
없었다.






해적들이 해안을 습격했지만
정작 큰 위험은 북쪽에 있었다.



그 당시 어둠숲과 달리는강
사이의 드넓은 로바니온 땅에는
돌 굴두르의 전적인 후원을 받는
사나운 족속이 살고 있었다.



그들이 종종 숲을 지나 침략해
오자 급기야는 창포강 남쪽의
안두인 유역에 인적이 드물어졌다.






이 발코스족은 동부에서
들어온 유사한 무리의 합세로
그 수가 끊임없이 불어났지만,
칼레나르돈에 살고 있던 백성들의
수는 줄어들었다.






키리온은 안두인대하의 경계를
지키기도 버거웠다.






[키리온은 적의 습격을 내다보고
북으로 원병을 청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 해(2510년) 안두인대하 동쪽
해안에 수많은 함선과 뗏목을
건조해 놓은 발코스족이 벌떼처럼
대하를 건너 수비대를 휩쓸어버린
것이다.







남쪽에서 진군해 온 지원부대는
진로를 차단당한 채 림라이트강
너머 북으로 밀려났다가, 갑자기
산맥에서 쏟아져 나온 오르크
무리로부터 급습을 받고 안두인
대하 쪽으로 쫓겨났다.



그때 북쪽에서 전혀 기대치 않던
원군이 도착했다.







곤도르 땅에 로한인의 나팔
소리가 처음으로 울려퍼졌다.



청년와 에오를이 기병들을
이끌고 와서 적을 쓸어버리고
칼레나르돈 평원 위로 발코스족을
추격하여 몰살시켰다.







키리온은 에오를에게 그 땅을
거주지로 내주었고, 에오를은
키리온에게 곤도르 영주들이
곤경에 처할 때면 우정의 도움을
주겠노라고 서약했다.]







<반지의 제왕 - 해설편>
[왕과 통치자들의 연대기]
{섭정 가}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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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두인 대하 동쪽을 거의
상실하게 된 곤도르의 영향은
감소 일로를 걷었고 반면에
사우론의 세력은 공격하는
입장을 계속 유지합니다.







우루크하이의 존재는 그만큼
사우론의 군세를 강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지요.



그뿐더러 동부의 수많은 이민족을
동원하는 사우론의 군사외교가
점점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북부에서
대이주를 시작한 에오를의
종족이 칼레나르돈 평원의
전투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원군으로 참여해 섭정 키리온은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 결과는 로한의 건국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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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섭정 키리온(내 아버님은
26대 섭정이지요)의 시대에는
그들이 원군으로 달려와 방대한
켈레브란트 평원에서 우리의
북부지대를 강점한 적을 무찌르는
데 일조하기도 했소.



그들이 바로 우리가 이름 붙여준
바 있는 말의 귀인들 로히림이오.








우리는 오랫동안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땅이었던 칼레나르돈
평원을 일부 나누어 주었고,
그 뒤로 그곳은 로한이라 불리게
되었소.



오래 전부터 그곳엔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기 때문이오.



그들은 우리의 동맹국이 되어
위급할 때면 도움을 주었고,
북쪽 국경과 로한협곡을 방어하며
충실한 이웃 역할을 해왔소."



<반지의 제왕 - 두개의 탑>
[일몰의 창]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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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섭정 키리온은 위기를
벗어난 데 대한 감사의 표시와
함께, 이미 인적자원이 고갈된
칼레나르돈 평원 일대에 에오를의
종족을 이주시켜 동맹국(위성국이라
생각했겠지만)을 수립해 국경 경계를
맡기게 됩니다.






이는 로마제국 후반에 상대적으로
협조적인 게르만 부족을 동맹국으로
삼아 토지를 주고 대신에 다른 종족의
침략을 막게 했던 것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키리온의 당시 결정은 곤도르의
고유한 영토를 할양한 것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고도 전해지지요.



곤도르의 보수파들 입장에선 대국의
영토를 뜨내기 종족에게 가져다바치듯
넘겨준게 자존심이 어지간히 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 통치섭정들의 장점인 유연한
사고는 이후 곤도르의 후반기 역사에서
현명한 선택이었음이 증명됩니다.






로한은 반지전쟁이 끝난 뒤까지도
곤도르의 가장 강력한 동맹자로
활약해 주었고, 에오를과 키리온의
맹약은 한번도 훼손된 적이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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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섭정 베렌의 시절에 한층
큰 위기가 곤도르에 닥쳤다.







오랫동안 준비한 막강한 세 함대가
움바르와 하라드로부터 쳐들어와
곤도르 해안을 급습했다.






적은 북으로 아이센강 하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곳에 상륙했다.



동시에 로한도 서쪽과 동쪽에서
공격을 받아 영토가 유린되고
그들은 백색산맥의 계곡으로
쫓겨났다.






그해(2758년) 북쪽과 동쪽에서
불어닥친 추위와 폭설과 함께
긴 겨울이 시작되어 겨의 다섯
달이나 지속되었다.



로한의 헬름 왕과 그 아들들이
그 전쟁에서 사망했다.






에리아도르와 로한은 재난과
죽음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산맥 이남의 곤도르는
상황이 그렇게 처참하지는
않아 봄이 오기 전 베렌의 아들
베레곤드가 침략자들을 물리쳤다.



그는 즉각 로한에 원군을 보냈다.



그는 보로미르 아래 곤도르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장수였다.



그가 아버지를 계승하자(2763년)
곤도르는 예전의 위세를 되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한은 전쟁의 상처에서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그것은 베렌이 사루만을 흔쾌히
받아들여 그에게 오르상크의
열쇠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해(2759년)부터 사루만은
아이센가드에 살게 되었다.



<반지의 제왕 - 해설편>
[왕과 통치자들의 연대기]
{섭정 가}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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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도르와 로한의 운명은 그러나
그리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이 새로운 동맹을 통한 안정을
바라지 않았던 사우론의 세력은
그야말로 세계대전급 준비를
통해 모든 방면에서 전쟁을
걸어왔고, 곤도르 북동부와
로한 일대는 전화에 휩싸여
멸망의 위기에 처할 지경에
빠졌습니다.






로한의 제1왕가가 헬름 대왕을
마지막으로 단절되는 시기가
바로 이때였지요.



그러나 다행히도 곤도르 남부의
건재한 세력 덕분에 위기는
겨우 벗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 로한은 곤도르에
많은 빚을 지게 된 셈이지요.



그리고 곤도르의 섭정이 당시에는
강력한 우방으로 만들기 위해
새로이 영토를 할양해준 마법사
사루만의 영지 아이센가드는
하필이면 이후 로한에 두고두고
화근이 됩니다.






하지만 곤도르 섭정의 판단에는
신성회의의 의장이자 곤도르와
상대적으로 친목을 유지해오던
사루만이 로한과 곤도르 모두를
도울 것이란 생각이었겠지요.




이렇게 사루만은 자신의 영지와
과거 누메노르의 유산인 오르상크
및 팔란티르를 차지하게 됩니다.



가운데땅에 군림하려는 그의
욕망은 이로서 날개를 달게 된
셈이지요.



--------------------------







안개산맥에서 난쟁이와 오르크
사이의 전쟁(2793~2799년)이
벌어진 것은 바로 베레곤드가
재위할 때였다.



남쪽으로는 전쟁에 대한 소문만
전해졌는데, 이윽고 난두히리온에서
도주한 오르크들이 로한을 가로질러
백색산맥에 터를 잡으려고 했다.








그 위험을 제거하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그 계곡에서 전투를
벌여야 했다.



21대 섭정 벨렉소르 2세가 죽자
미나스 티리스에 있던 흰나무도
죽었다.







그러나 아무 데서도 묘목을
구할 수가 없었기에 그 나문는
국왕이 귀환할 때까지 죽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투린 2세 때 곤도르의 적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강성해진 사우론이 떨치고
일어날 때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모르도르의 오르크들이 창궐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가장 대담한
이들을 빼고는 모든 백성들이
이실리엔을 버리고 안두인 대하
너머 서쪽으로 이주했다.




투린은 이실리엔에 병사들을
위한 비밀 은거지를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 헨네스 안눈이 가장
오랫동안 병사들이 남아 지키던
곳이었다.



그는 또한 아노리엔을 방어하기
위해 카이르 안드로스 섬을 다시
요새화했다.







그러나 곤도르의 진짜 위험은
남쪽에 있었다.



그 쪽에서는 하라드인들이
남곤도르를 점령한 데다
포로스강을 따라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다.







이실리엔이 대규모 병력의
침공을 받자 로한의 폴크위네
왕은 많은 병사를 보내 에오를의
서약을 이행하고, 아울러 과거
베레곤드에게서 받은 원조에
대한 빚을 갚았다.



그 도움에 힘입어 투린은
포로스강의 여울목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폴크위네의 두 아들은
모두 그 전투에서 전사했다.



기병들은 자기네 방식대로
그들을 묻었다.



두 왕자는 쌍둥이였기에 하나의
무덤에 같이 뉘였다.



그 무덤 '하우드 인 과누르'는
오래도록 강변 위에 우뚝 솟아
곤도르의 적들은 그곳을 지나치길
두려워했다.



투르곤이 투린의 뒤를 이었다.



그의 재위 기간에 기억할 만한
주요 사건은, 그가 죽기 이태 전
사우론이 다시 떨치고 일어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선언하고, 오랫동안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모르도르로
재입성했다는 것이다.







그 후, 바랏두르는 다시 한번
일어섰고, '운명의 산'은 화염을
내뿜었다.



이실리엔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이들도 모두 멀리 달아났다.



투르곤이 죽자 사루만은 아이센가드를
자기 것으로 차지하여 요새로 만들었다.







<반지의 제왕 - 해설편>
[왕과 통치자들의 연대기]
{섭정 가}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



통치섭정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세는 점점 악화 일로를 걷습니다.



이번에는 사우론 세력이 정면으로
공격을 개시합니다.







곤도르 국력의 바탕이던 남곤도르
영지를 집중 공략해 이전 전쟁의
교훈을 반영했고, 안두인 대하
동쪽의 인구가 많고 최전선에
해당하는 이실리엔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게 됩니다.



로한의 지원병 덕분에 어려움을
벗어나지만 로한은 많은 피해를
입었고 곤도르의 섭정은 막대한
황금으로 보답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실리엔 영지 회복을
도모하는 근거지로 '일몰의 창'
헨네스 안눈을 건설합니다.







파라미르의 이실리엔 유격대가
본거지로 사용하던 폭포 뒤
동굴요새가 바로 이곳이지요.



또한 이 시기 북부에서 벌어진
드워프와 오르크 간의 대전쟁의
여파가 미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씨가 마를 정도로
유혈격전을 치르다 끝내 패배한
안개산맥의 오르크들 잔당이
남쪽으로 도주해 자리잡으려
하는 풍선효과가 발생한 것이죠.



마치 훈족이 서진하자 이에
압박을 받은 게르만족이 로마
영내로 밀고들어오려 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렇게 통치섭정들은 바람잘
날 없는 나날을 보내며 계속
줄어드는 세력 유지에 한숨
쉬는 미나스 티리스의 밤을
보내게 됩니다.



--------------------------



엑셀리온 2세는 현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아직 남아 있는 병력으로

모르도르의 공격에 대비하여

영토의 수비를 강화했다.








그는 원근에서 모든 인재를

끌어 모아 휘하에 두었고,

신뢰할 만한 이들에게는

걸맞은 지위와 보상을 해주었다.



그는 국사의 많은 부분에 있어

자신이 누구보다도 아끼는 한

위대한 장수의 도움과 조언을

얻었다.



곤도르인들은 그를 소롱길,

즉 ‘별의 독수리’라고 불렀다.



그는 민첩하고 눈이 날카로운

데다 망토에 은빛 별 하나를

달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본명과 출생지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로한의 셍겔 왕 아래에서

일하다가 엑셀리온에게 왔지만

그렇다고 로한인도 아니었다.



그는 육지에서든 바다에서든

위대한 지휘자였다.



하지만 그는 엑셀리온의 시대가

끝나기도 전에 자신이 온 어둠

속으로 떠나 버렸다.







소롱길은 종종 엑셀리온에게

움바르 반란군의 세력이 곤도르에

크나큰 위협이며 만일 사우론이

전쟁을 벌이고 나선다면 남부의

영지에도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침내 그는 섭정의 허락을

얻어 소규모 함대를 준비한

뒤에 적이 예기치 못한 야간에

움바르에 잠입해 해적들의

함선 대부분을 불태웠다.



그는 부두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항구의 대장을 죽인 후 경미한

손실만 입고 함대를 이끌고

귀환했다.







그러나 펠라르기르로 돌아온

그는 슬프고 놀랍게도 크나큰

영예가 기다리고 있는 미나스

티리스로 돌아가지 않으려

했다.



그는 엑셀리온에게 다음과

같은 작별의 말을 전했다.



“영주이시여, 이제 제게는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있습니다.



제가 운명에 따라 다시 곤도르에

오기까지 앞으로 오랜 세월이

흐를 것이고, 곤도르에는 많은

위험이 닥칠 것입니다.”






그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또 그가 누구의 부름을 받았는지에

대해 그 누구도 헤아릴 길이

없었지만 그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는 전해졌다.



그는 배를 타고 안두인대하를

건넌 다음 거기서 동지들과

작별하고 혼자 길을 나선 것이다.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는 어둠산맥을 향하고 있었다.



소롱길이 떠났다는 소식은

도성 안 사람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엑셀리온의 아들 데네소르에게는

그렇지 않았을지 모르나, 그것은

도성의 모든 백성에게는 큰

손실로 여겨졌다.



이제 섭정 자리에 올라도 될

만큼 장성한 데네소르는 4년

후 아버지가 죽자 섭정직을

물려받았다.



데네소르 2세는 장신에 용맹하고

의기 높은 인물로 곤도르가 지난

여러 세대 동안 겪은 그 어떤

이보다 왕다운 풍모를 지녔다.



또 그는 지혜롭고 선견지명이

있으며 높은 학식을 갖추었다.



 

사실 그는 가장 가까운 친족에

못지않게 소롱길과 흡사했으나,

백성들의 사랑과 부친의 평가에서는

언제나 그 이방인의 아래에 놓였다.


실제로 소롱길은 데네소르와

우열을 겨룬 적이 없고, 그

부친의 신하 이상으로 스스로를

높게 여긴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소롱길이 경쟁자가

영주가 되기 전에 떠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 두 사람이 섭정에게 드린

조언 중 서로 어긋난 것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소롱길은 종종 엑셀리온에게

아이센가드의 백색의 사루만을

믿지 말고 대신 회색의 간달프를

맞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데네소르와 간달프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엑셀리온의 시대가 끝나자

미나스 티리스에서는 회색의

순례자를 별로 반기지 않았다.






따라서 모든 일이 명료하게
드러난 훗날에 많은 이들은
예민하고 선견지명이 있으며
그 시대의 누구보다도 통찰이
깊던 데네소르가 이방인
소롱길의 정체를 알아채고
그와 미스란디르가 자신의
지위를 찬탈하려고 작당했다고
의심을 품은 것이라고 여겼다.



데네소르는 섭정이 되자(2984년)

모든 지배권을 한손에 장악하는

강력한 군주가 되었다.



그는 말수가 적었고 간언에는

귀를 기울였으나 결정은 자기

생각대로 내렸다.



그는 늦게 결혼해(2976년)

돌 암로스의 아드라힐의 딸

핀두일라스를 아내로 맞이했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와
부드러운 심성을 지녔으나
결혼한 지 채 12년이 안되어
세상을 뜨고 말았다.



데네소르는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낳아준 장남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그녀를 애틋하게

사랑했다.






세인들이 보기에 그녀는,

바다를 내다보는 계곡의

한 송이 꽃이 불모의 바위

위로 옮겨진 것처럼 견고하게

방비된 도성에서 시들어 죽은

것 같았다.



동쪽 어둠이 그녀의 마음을

공포에 떨게 했고, 그녀는

바다가 그리워 언제나 남쪽으로

시선을 보내곤 했다.



아내가 죽은 후 데네소르는

예전보다 더 음울하고 과묵해

졌으며, 자기 시대에 모르도르의

공격이 닥칠 것을 예견하며

깊은 상념에 잠겨 탑 속에

오래도록 홀로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훗날 세인들은 그가 지식을

갈망했지만 자존심이 강한

나머지 자신의 의지력을 굳게

믿고 백색탑의 팔란티르를

들여다본 것이라고 믿었다.



미나스 이실이 함락되고

이실두르의 팔란티르가

적의 수중에 들어간 후로

그 때까지 어떤 섭정이나

에아르닐과 에아르누르

왕들조차 감히 이 돌을

사용하려고 한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미나스 티리스의

돌은 곧 아나리온의 팔란티르로,

사우론이 차지한 것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데네소르는

자신의 영토 안과 멀리 국경

너머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상하게 알고 있었기에,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는 지식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즉 그는 사우론과 의지력을

겨루느라 때 이르게 노쇠했다.



그 결과 데네소르의 마음

속에는 절망감과 더불어

자만심이 점차 커져 갔다.






마침내 당대의 모든 일 가운데

백색탑의 영주와 바랏두르의

영주 사이의 투쟁만을 유일한

것으로 여기고 자신을 섬기지

않으면 사우론에 대적하는

다른 모든 세력들까지도
불신했다.



이런 가운데 반지전쟁이

임박하면서 데네소르의

아들들도 장성해 갔다.



동생보다 다섯 살 위로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보로미르는 용모와

자존심에서는 아버지를

닮았으나 다른 면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과거의 에아르닐

왕처럼 아내를 들이지 않고

오로지 무예에만 탐닉하는

부류의 인물이었다.







그는 두려움을 모르고
강건했으나, 옛 전투담을
빼고는 학문에 관심이

없었다.



아우 파라미르는 용모는
형과 흡사했지만 심성은
전혀 달랐다.





그는 부친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날카롭게

읽어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들을

경멸하기보다는 측은하게

여겼다.



그는 행동거지가 온화했고

학문과 음악을 사랑했다.



그래서 당대에는 그의 용맹이

형만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쓸데없이 위험에 몸을

내맡기면서까지 영광을 추구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는 간달프가 도성에 올 때면

크게 반기고 그의 지혜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다른 많은 일이 그랬듯이 이

일도 부친의 심기를 거슬렸다.



그러나 형제 사이의 우애는

매우 돈독했다.





보로미르가 늘 파라미르를 도와

주고 돌보아 준 어린 이래로

둘의 우애는 내내 그러했다.




아버지의 총애나 사람들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는

시기나 경쟁심이 생기지 않았다.






파라미르가 보기에 곤도르의

그 어느 누구도 데네소르의

후계자이자 백색탑의 대장인

보로미르와 겨룰 자가 없었고,

보로미르 또한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시험에 닥치자

그렇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반지전쟁에서 이 세 인물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소상하게 기술되어 있다.







어쨌든 반지전쟁 이후 통치
섭정들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이실두르와 아나리온의 후계자가
돌아와 새로이 왕권을 확립하고,
엑셀리온 탑에서 다시금 흰나무의
깃발이 휘날리게 된 것이다.



<반지의 제왕 - 해설편>
[왕과 통치자들의 연대기]
{섭정 가}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



이제 통치섭정들의 기나긴
지배권도 그 종막을 향해
달려가는 시절로 접어듭니다.



간달프의 음모와 책동(?!)대로
북왕국의 후계자 아라곤이 은밀히
로한을 거쳐 신분을 세탁한 뒤,
가명으로 섭정의 가신이 됩니다.



미리 자신이 돌아와 지배권을
차지해야할 동네의 정황을
숙지하러 온 셈이지요.



그는 많은 공적을 남기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판단과
함께, 섭정의 후계자 데네소르가
날카롭게 그를 의심하고 있음을
알고 자리를 피합니다.



데네소르는 위대한 자신의
선조들에 못지 않게 할 수 있는
노력을 모두 기울여 곤도르를
수호하는데 애를 썼으나,
그의 가정사는 순탄하지
않았으며, 유일한 안식처가
되주던 아름다운 아내와도
일찍 사별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와 그의 두 아들의
일화는 이미 원작과 영화를
통해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지요.



--------------------------



파라미르는 거기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서 아라고른과 마주했다.



그리고는 아라고른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곤도르의 마지막 섭정이 임무를
사직할 것을 청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흰 막대를 바쳤다.






그러나 아라고른은 막대를
쥐었다가 다시 건네주며 말했다.



"그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내 혈통이 이어지는 한 그것은
그대와 그대 자손에게 영원히
부과될 것이오.



이제 그대의 임무를 수행하시오."



그러자 파라미르가 일어나 청량한
목소리로 외쳤다.



"곤도르인들이여, 이 도시 섭정의
말을 들으시오!






보시오!



마침내 왕권을 되찾으러 오신
분이시오!



이 분은 아라소른의 아드님
아라고른 왕이시며 아르노르
왕국 두네다인의 군주이시자
서부대군의 지휘관이시며
북방의 별을 보유하셨고
복원된 위대한 칼의 주인이십니다.



이 분은 전쟁의 승리를 가져
오셨고 또한 치유의 손길을
가지신 요정석이시기도 합니다.



또한 누메노르의 후계 엘렌딜의
아드님이신 이실두르의 아드님
발란딜 혈통의 엘렛사르이십니다.



이 분께서 도시에 입성하셔서
왕이 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전군과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옳소"하고 외쳤다.








(중략)



"곤도르인들이여, 현자들은
왕이 되기 위해선 부왕이
서거하시기 전에 직접 왕관을
계승받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부왕이 계신 능에
홀로 가서 그의 손에서 왕관을
가져오는 것이 관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므로 내가 섭정의 권한으로
과거 우리 선조들의 시절에
통치하셨던 마지막 왕,
에아르누르 왕의 왕관을
라스 디넨에서 이리로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호위병들이 걸어나왔고
파라미르가 상자를 열어 옛
왕관을 치켜들었다.



그것은 궁성기사들의 투구와
같은 모양이었으나 더욱 고상한
순백색이었으며 양쪽 날개는
바다새의 날개를 본떠 진주와
은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는 곧 바다를 건너온 왕의
상징이었다.







일곱 개의 보석이 고리형으로
박혀 있었으며 그 가장 위에는
불꽃처럼 빛을 뿌리는 커다란
보석이 있었다.



아라고른은 왕관을 건네받은
다음 번쩍 치켜들고 외쳤다.



"에트 에아렐로 엔도렌나 우툴리엔.
시노메 마루반 아르 힐디냐르 텐 암바르메타!"



이것은 엘렌딜이 바람의 날개를 타고
바다에서 왔을 때 한 말로서,



'나는 위대한 바다에서 이 가운데땅으로
왔노라. 나와 내 후손들은 이곳에서
이 세상의 종말이 올 때까지 머무를
것이다!"



라는 의미였다.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
[섭정과 왕]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







파라미르는 돌아온 왕의 손으로
치유를 받아 생명을 건졌으며,
귀환한 왕이 보여준 위업과 무용을
인정해 기꺼이 곤도르의 혼란을
막고 그가 앞장서서 통치권을
반납하게 됩니다.



그의 부친 데네소르가 명석하고
희생적인 군주였음에도 끝내
그 자신의 한계로 극복하지 못한
과오를 파라미르는 겸허한 성찰로
극복하고 왕권을 부흥시키는 데
솔선수범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통치섭정들이 처음
막중한 책무를 부여받을 때에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라
회고했던 곤도르의 전성기를 훌쩍
뛰어넘는 영광스런 것들이었지요.







그리고 너무나 무거웠던 책임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진 파라미르 이후
섭정 가문은 텔콘타르(성큼걸이)
왕가의 왕들을 보좌하며 영광스런
연대기를 써내려갔을 것입니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너무나
무거운 책임을 짊어져야 했던
마르딜의 가문을 기억하며......



by 붉은10월 | 2015/01/26 10:23 | 아르다 연대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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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Oryn. at 2015/01/26 17:52
호호 왠지 포스팅에서 붉은10월 님의 애정이 느껴진다면 제 착각이려나요 ^^;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아라곤이 돌아올 때까지 섭정들이 나라를 강건하게 지켜주었기 때문에 왕님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거겠죠... 그런 가운데 백성들은 여전히 왕이 돌아오길 기다렸다는 걸 보면 섭정들이 약간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만 ^^;
개인적으로 보로미르는 느낌이 너무 근육근육(...)한데다가 좀 똑똑해보이지 않아서(물론 배역을 맡은 배우님은 참 좋아합니다만...) 왠지 애잔하고 스마트한 느낌의 파라미르에게 더 마음이 가지만, 왕가 못지 않게 대단한 가문이란 느낌이네요~.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15/01/26 18:47
섭정의 고귀한 혈통은 데네소르에서 파라미르로 이어진
셈이니까요.

로한의 에오메르와 곤도르의 보로미르는 닮은과로,
아라곤이 로한에서 처음 에오메르와 대화할 때도
에오메르가 보로미르에 대한 칭찬을 하며 그가 죽었다 하자
무척 애석해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마 기질도 무척 닮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순수한 무인 타입, 곤도르의 마지막 왕인 에아르누르와
같은 과가 보로미르라면, 온갖 수단으로 국토를 수호하며
대국적으로 판단하는 키리온이나 엑셀리온 2세 같은 타입이
파라미르겠지요.

그래서 혹자는 파라미르가 나이가 들고 의심이 늘면
데네소르의 판박이가 될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이상하게 섭정가문에 대해선 감정이입이 될 때가 있어요.

나와 우리 가문은 이렇게 고생하면서 망해가는 나라를
지키려고 애쓰는데 정작 별로 한 것도 없고 혼란만 준
쓸모없는 왕을 그리워하는 백성들이란 이해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내 백성이라고 지키려는 그런 감정이 어떤 건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서 말이죠...
Commented by 09814 at 2017/11/11 12:53
영화보면서 데네소르가 질투심만 많고 어리석은 찌질이(..)라고 생각했는데, 데네소르도 원래는 현명하고 강건한 인물이었군요. 아내를 잃고 팔란티르를 사용하는 바람에 그리 된건지...
섭정가문이 천년동안 사우론의 압력에 맞서 곤도르를 수호했는데 남왕국 정통 후손도 아닌 두네다인 아라곤이 왕위를 계승해 버린다니 데네소르의 심정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결국은 마지막에도 찌질한 모습으로 죽어버린..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17/11/11 19:25
데네소르는 팔란티르를 쓸때마다 사우론과 직접 눈싸움을 해가면서도 버텨냈던 존재이지요. 영화에서 가장 심하게 평가절하된 인물이 데네소르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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