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TR] 호빗의 건축문화에 대해



<반지의 제왕>3부작은 감독

피터 호빗에게는 영화인생의

전기가 된 기념비적인 작품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그의

고향인 뉴질랜드 영화계가

전 세계에 조명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





피터 호빗이 <반지의 제왕>을

만들기 전, 할리우드 진출작인

<프라이트너>의 특수효과를

만들기 위해 만든 웨타디지털이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이후

여러 특수효과 작업에 투입되어

많은 성과를 냈지요.





※ 웨타디지털은 한국에도

영화 관련 행사로 수 차례

찾아오기도 했었고, 봉준호

감독의 <괴물> 특수효과작업도

참여했었습니다.





그리고 중간계를 현실로 만든

뉴질랜드의 뛰어난 풍광 역시

화제가 되어 관광산업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하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았던

곳은 바로 호빗들이 사는 샤이어

세트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영화촬영이

모두 종료된 다음 자연보호 등

목적으로 모두 해체되었다고

전해져 많은 분들을 안타깝게

했었다지요.





이후 <호빗> 3부작에서 재현된

샤이어 세트장은 영구건조물로

일찌감치 계획되어 관광명소로

변신했고, 국내에서도 뉴질랜드

여행 시 필수 코스가 되었다고

하네요.





집주인인 호빗들의 모습을 너무나

닮은 동글동글 귀여운 호빗들의

굴집은 그냥 사진만 봐도 현실의

피로를 날려버리고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게 하지만,

거기에 더해 실제로 거기에서

살면 행복해질 것 같은 소소한

아름다움이 깃든 공간이기도

합니다.





호빗들의 건축 문화와 취향에

대해 원작에서 설명된 부분들을

소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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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호빗은 원래 땅속

굴집에 살았고(혹은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여전히

그런 집을 가장 편안하게

느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주거 형태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빌보 시절의 샤이어에서

과거의 관습을 유지하는 이들은

대체로 대단한 부자이거나

지독한 가난뱅이뿐이었다.





가난한 호빗들은 지극히

원시적인 형태의 굴, 곧

창문이 하나뿐이거나 아예

없는, 말 그대로 진짜 굴에서

살았다.





반면에 부유한 이들은 여전히

옛날 방식의 단순한 굴을 좀더

고급스러운 형태로 만들어 살았다.





하지만 이와 같이 크고 가지가

많은 터널들(그들은 이것을

‘스미알’이라고 했다)을 짓기에

적합한 부지는 아무 데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

[프롤로그 - 호빗에 대하여]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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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끝말의 붉은 책>에 의하면,

원래 호빗의 선조들이 살던

북부 지대에서 이웃에 살던

로한의 선조들은 이들 반인족을

‘굴에 사는 이들’이라고 해서

“홀뷔틀란”이라고 이름붙였지요.





(이 사실은 메리와 피핀이

아이센가드에서 로한의 세오덴

왕을 만나 처음 듣습니다)





‘호빗’이란 이름은 후에 이들이

대역병과 암흑의 세력을 피해

산맥을 넘어 에리아도르 서부

샤이어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서부 공용어를 구사하기 시작하는

와중에 북부어 계열의 ‘홀뷔틀란’

에서 변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즉, 호빗의 선조들은 굴집을

주거로 삼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초창기의 굴집은 원시인이나

고대사회의 혈거 형태에 보다

가까웠을 것입니다.





※ 이런 종류의 굴집은 요즘

해외여행이 널리 보급되어

터키 여행을 가는 분들이 꼭

들르는 곳 중 하나인 카파도키아

동굴 호텔 같은 고급스런

모델들 말고, 아일랜드 대기근

이전 소작농들이 살던 움집 같은

형태를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





호빗 사회 역시 빈부격차가

엄연히 있는 곳이며, 엄격한

계급사회라 보기에는 어렵지만

지주 등 유한계급(생계를 위한

노동을 직접 안 해도 먹고 살

만한 부유층, 주로 물려받은

토지나 금전의 임대수익으로

생활하는 특징)과 이들에게

고용(일상적/부분적)되어 일하는

소작인, 서비스 제공인 등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빌보-프로도와 감지네 집안

같은 관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지요.





하지만 근래 각박한 갑-을

구도의 한국사회보다는 좀 더

배려와 느슨한 상하 구조라

보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대규모 고용인을

두지 않고 주인과 하인이

(서열은 엄연히 존재하는)

친구 관계로 지내던 영국

근대 이전의 여유로운 메이드

문화라고 해야 할까요.





호빗 사회의 특징인 중소규모

농장과 그 농장을 경영하는

가문 연합의 특성이 잘 드러난

부분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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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평지나 저지대의

호빗들은 인구가 늘어나면서

땅 위에다 집을 짓기 시작했다.





사실 호빗골이나 턱보로,

혹은 샤이어의 중심 도시인

흰구릉의 큰말과 같은 구릉지대나

오래된 촌락에서도 이제는 목재나

벽돌, 석재로 지은 집이 많았다.





특히 방앗간지기나 대장장이,

밧줄 만드는 사람, 달구지 목수와

같은 부류들이 이런 집을 선호했다.





왜냐하면 들어가 살 굴집이 있는

경우에도 호빗들은 오래 전부터

헛간이나 작업장을 짓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

[프롤로그 - 호빗에 대하여]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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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들은 형편 닿는 한 좋은

땅을 갖고 농장을 경영하면서

조상 전래의 주거양식인 굴집을

잘 관리하고 수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겠으나 원작에서

설명되는 것처럼 창고나 헛간을

굴집 짓기도 모자란 터전에다

짓는 건 실용적이지 않았고,

지상에다 별채를 짓는 식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샤이어 외의 외곽지대나

브리 마을, 메리의 본거지인

노룻골 등에선 ‘큰사람’들과

유사한 형태로 굴집이 아닌

기둥을 세우고 외벽을 짓는

일반적인 형태의 주거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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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 건물과 헛간을 짓는 관습은

브랜디와인강 하류의 구렛들

주민들이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파딩에 속하는 그 지방 호빗들은

꽤 체격이 크고 다리도 굵었으며,

질척거리는 날에는 난쟁이들의

장화를 신었다.





하지만 이들은 혈통상으로는

넓게 보아 풍채 혈통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사실상 턱에 잔털을

기르는 이들이 많은 데서 입증된

셈이었다.



털발이나 하얀금발 혈통은

수염이라곤 흔적도 없었다.



사실 구렛들 주민들이나 호빗들이

나중에 차지한 강 동쪽의 주민들은

대부분 남쪽 멀리서 샤이어로

올라온 이들이었고, 그래서 이들은

여전히 샤이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이름과 이상한

말을 많이 쓰고 있었다.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

[프롤로그 - 호빗에 대하여]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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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의 세 혈통은 다 같은

호빗이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다른 문화를 갖고 있었지요.





풍채 혈통은 털발 혈통에

비해 뒤늦게 샤이어 인근에

도착했고, 대이주 과정에서

제일 늦게 장정을 마치다

보니 이방의 색이 꽤나 많은

편이었다고 전해지지요.





※ 골룸이 속했던 안두인

대하 인근 창포벌판 일대에

잔존한 호빗의 먼 친족

계통도 풍채 혈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이들의 대표격은 메리가

속한 노룻골(버클랜드)의

가문이지요.





아마 오랫동안 교류해왔던

큰사람들의 영향을 풍채 혈통은

꽤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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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많은 기술도 그렇지만

건축 기술도 두네다인

사람들에게서 얻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호빗들은 그것을

초창기 인간들의 스승이던

요정들에게서 직접 배웠을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높은요정들이 아직은

가운데땅을 떠나지 않고 그

당시에도 서쪽 멀리 회색항구와

샤이어 영토 내의 여러 곳에

살았기 때문이다.





서끝말 너머 탑언덕에서는

까마득히 먼 옛날에 세워진

세 개의 요정탑을 여전히

볼 수 있었다.





탑들은 달빛이 비치면

멀리까지 빛을 발했다.





가장 높은 탑이 가장 멀리서

푸른 언덕 위에 외로이 서

있었다.





서파딩의 호빗들은 그 탑

꼭대기에 올라가면 바다를

볼 수도 있다고 했다.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

[프롤로그 - 호빗에 대하여]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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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떨어진 동쪽 지방의

요정들조차 부러워할 만큼

샤이어의 호빗들은 정작

그들은 별로 신경쓰지도

않던, 회색항구가 있는 린돈

지역에 가장 가까이 거주하는

종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샤이어의 호빗들에겐

별로 이로운 점이라 생각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여행자들’이라 불리는

일군의 호빗들이 가운데땅

전역에 명성을 떨치지만 이들

이전에 일상적으로 교류하는

빈도는 오히려 빌보가 개척한

난쟁이들과의 교역보다 영향력이

미미해 보였으니까요.





그리고 굴집을 애호하는 호빗

취향과 요정들의 건축양식은

그렇게 잘 어울려 보이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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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 거기 올라간

호빗이 있다는 얘기는 없었다.





사실 바다를 보았거나 항해를

한 적이 있는 호빗은 거의

없었고, 돌아와서 그 소식을

전해 준 호빗은 더더욱 없었다.





호빗들은 심지어 강이나 작은

배까지도 깊은 의혹의 눈초리로

지켜보았고, 헤엄을 칠 줄

아는 이들도 많지 않았다.





샤이어 시대가 진행될수록

그들은 요정과 점점 더 말을

하지 않게 되면서 그들을

두려워했고, 그들과 거래하는

요정들을 불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 사이에서

바다는 공포의 단어이자

죽음의 상징이었고,

그들은 서쪽 언덕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

[프롤로그 - 호빗에 대하여]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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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특히 가장 다수파인

털발 혈통이 자리잡은 샤이어는

상당한 배타성을 점점 띠게

됩니다.





아마 그들의 선조가 대이주

과정에서 겪은 여러 가지

불유쾌한 경험들에, 북왕국이

멸망하는 과정에서 조상들이

겪었던 대역병이나 전쟁에

휘말렸던 기억들 때문일 거라

생각됩니다.





전란의 와중에서 피해를 입은

뒤 폐쇄적인 자급자족 공동체로

그들만의 사회를 유지하면서

안온하게 살았던 호빗들의

역사는 그들의 생활 문화 전반에

작동하게 된 셈이지요.





※ 순수 털발 혈통은 이후로도

모험가 기질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3시대 말에

유명해진 ‘여행자들’은 대개

풍채 혈통(메리), 하얀금발

혈통(피핀), 이들 혈통의 피가

강하게 섞인 혈통(빌보, 프로도)

들이며, 순수한 털발 혈통은

거의 없었지요. 황소울음꾼

반도브라스나 연초를 처음

보급한 마르초와 블랑코 등도

이 혈통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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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기술이 요정에게서

나왔든 인간에게서 나왔든

호빗들은 이를 자기 식으로

활용했다.





그들은 탑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의 집은 대개 길쭉하고,

나지막하고, 안락했다.





사실 아주 오래된 집들은

스미알을 흉내내서 지은 것에

불과하고, 마른 풀이나 짚,

아니면 떼로 지붕을 얹었고,

벽도 다소 불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단계는 샤이어

초기 시절 이야기이고,

호빗 건축은 난쟁이들에게서

배웠거나 스스로 개발한

도구들로 인해 많이 바뀌고

또 개선되었다.





둥근 창문, 심지어 출입문까지도

둥근 모양을 선호하는 것이 호빗

건축술에 남은 중요한 특징이었다.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

[프롤로그 - 호빗에 대하여]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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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들의 건축 양식도 처음에

단순한 토굴이나 움집 수준에서

그들 주변에 있던 ‘큰사람’들과

난쟁이들에게 배운 기술이 접목되어

점차 고유한 호빗 양식으로 발전해

갑니다.





특히 둥글둥글한 그들 삶처럼

대문이나 창문, 그리고 복도

형태까지 대부분 곡선미를 띤

원형이 강조되었지요.





혈통은 인간에 가깝지만

교류의 빈도나 기질에 있어선

난쟁이들과 근연성이 강해

보이는 측면도 꽤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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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어 호빗들의 주택과 굴집은

종종 규모가 크고, 대가족이

살고 있었다.





(골목쟁이네 빌보와 프로도는

요정들과의 친교를 비롯하여

다른 많은 점에서도 그랬듯이,

아주 예외적으로 독신으로

살았다)





큰 스미알의 툭 집안이나

브랜디 홀의 강노루 집안의

경우처럼 이따금 여러 세대의

친척들이 갈래굴이 많은

조상 전래의 저택 한 곳에서

(비교적) 평화롭게 살았다.





모든 호빗은 어떤 경우에나

씨족 중심적이어서 자신들의

친족 관계를 몹시 중요하게

여겼다.





그들은 무수한 분기(分岐)가

이루어진 기다랗고 세세한

족보를 사용했다.





호빗들과 상대할 때는 누가

누구와, 어느 정도 친척

관계인지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

[프롤로그 - 호빗에 대하여]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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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의 관료 기구나 통치

조직에 익숙하지 않은 호빗

사회는 가문들 간의 협의에

따른 자치체 전통이 강했고,

그에 따라 오래되고 힘이

강한 가문의 발언권은 상당히

강한 편이었습니다.





굴집은 마치 토끼굴처럼 계속

확장되어갔고(터만 잘 잡으면

땅을 별도로 구입하지 않아도

개발이 가능하니까요), 가장

강성하고 역사가 깊은 가문인

투크 집안 같은 경우에는

지하도시 급의 굴착이 이뤄져

나중에 사루만이 이끈 불한당들

압력에도 끄떡 없이 방어전을

수행할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런 굴집도시들은 정말 대단한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수백명의 호빗 혈족이 사는

굴집 아파트 단지였을 테니까

말이지요.





호빗 건축의 가장 큰

금자탑일 그런 굴집맨션

이미지가 후대에 전해지지

않은 건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호빗들의 건축양식은 다른 민족들이
그렇듯이 그들의 사회와 문화를 잘
구현한 것이었습니다.




* 그리고 그런 호빗들의 사회와 주거양식은
반인족으로 버전이 바뀐 근대 초입 이전의
영국의 풍요로운 농촌의 변용이었지요.
굴집이 아니라 농장 중심에 자리잡은
작은 장원과 주변 건물들, 잘 정돈된
농가들로 바꾸면 바로 먹고 살 만한
영국의 농촌 풍경이 곧 어느새 샤이어가
되어버립니다. *




호빗들의 주거와 건축만 이해해도
그들이 어떤 일상을 살아가는
종족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을만큼
말이지요.


by 붉은10월 | 2015/02/15 05:22 | 아르다 백과사전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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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바람뫼 at 2015/02/15 09:36
반지하에 살았던 경험으로 과연 굴집이 습기에 강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요... 'ㅂ'

동굴 생활하니까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에서 집을 짓는 것보다 산을 파고 들어가는 게 훨씬 살기 쉽더군요 ㅎㅎ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15/02/15 17:14
저도 제습기라도 갖춰놓지 않으면 습기 문제는
정말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암튼 그렇다네요 설정이...

그래서 인류 초기 건축양식이 땅을 좀 파내고 지붕만
덮은 움집 아니겠습니까 암사동 움집터가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Commented by Oryn. at 2015/02/15 14:59
저렇게 굴 또는 지하에 집을 짓고 가는 게 호주식 주거양식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굉장히 아늑해보이내요 ㅎㅎ
저두 윗분처럼 습기는 어찌하나라는 의문도 있지만요.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15/02/15 17:17
Oryn.님의 습기 우려는 저도 공유하는...

호주식 주거양식이라기보다 북미대륙이건 호주건
아일랜드건 집을 짓는데 자재와 시간이 부족한 개척민이
조건만 맞으면 즐겨 손쉽게 만들던 주거양식인 셈이지요.

다만 톨킨님 설정과는 달리 벌레나 위생, 습기 문제 등이
해결되어야 했지만요. 뗏장을 두르면 장점은 나물밭이
통째로 지붕에 올라올 수 있다는 점, 단점은 거기에 풀만
있는 게 아니라 온갖 벌레알이나 둥지가 같이 붙어 온다는
거죠 덜덜
Commented by ㅋㅋ at 2015/02/15 18:56
Austrailian architect가 아니라 한자로 호주(??)인듯 합니다
Commented by 메들리 at 2015/02/15 15:07
다굴집인데 엘프들의굴과 호빗들의굴 오크들의굴이 풍기는늬앙스는 천지차이인거같아요ㅋㅋ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15/02/15 17:13
오르크와 트롤의 굴 : 원시인들의 혈거풍경(말 그대로 야만인)
호빗들의 굴 : 잘 정돈된 카파도키아 동굴가옥(중산층 농민)
엘프들의 굴 : 지하 방공호를 가장한 궁전(말 그대로 귀족)
인 셈이죠...
Commented by 알렉세이 at 2015/02/15 15:10
으으 빌보가 부르주아였다니.-ㅂ-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15/02/15 17:12
빌보는 평생 생계를 위한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여행다니고 친구만나고 책쓰고 시와 노래를 만들던
상부르주아였습니다...(먼산)
Commented by 모모 at 2015/02/16 01:57
항상 정성가득한 좋은 글 잘 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붉은10월 at 2015/02/16 04:34
허접하고 장황한 글 좋게 봐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사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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